▲ 김종억 / 파주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홍보계장
18대 국회의원들의 선거공약이 말잔치에 그쳤다. 얼마 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8대 국회의원의 공약 완료율이 35.1%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국회의원 중 18.3%는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공약이행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했다고 한다. 현 국회의원 임기가 오는 5월 29일 끝나는 만큼 미완성 공약 대부분은 삽도 뜨기 전에 용도 폐기될 전망이다.

이런 개탄스런 결과를 접하면서 되새겨 보는 것이 매니페스토운동이다. 매니페스토란 후보자가 공약을 발표할 때 목표, 우선 순위, 절차, 기한, 재원의 다섯가지 요소를 구체적인 수치 형태로 제시해 유권자가 쉽게 검증하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그 어원을 보면 '증거물'이란 의미도 있다고 하니, 어떤 약속을 구체적인 물증의 형태로 남겨서 그대로 지키자는 뜻일 게다. 공약을 명문화하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예산과 기한, 로드맵, 파급효과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용에 담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니페스토는 2006년 지방선거에 도입된 이후, 수차례 선거에서 활용된 바 있다. 하지만 공약 완료율 35.1%에 머문 것을 보면 선거 장식품이거나 속빈 강정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니페스토의 인지도는 높아졌겠지만, 그 효용성에 대해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매니페스토 선진국의 모습은 어떨까. 영국을 보자. 영국 시민들은 정당이나 후보자의 공약집을 서점에서 구매하여 볼 만큼 매니페스토가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또한, 집권 가능성이 큰 정당의 매니페스토가 발표되는 날에는 매니페스토에 실린 정책과 관련된 산업이나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움직일 정도라고 한다. 유권자의 합리적인 사고, 공약의 진정성에 대한 신뢰가 밑받침 되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매니페스토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첫째, 후보자는 매니페스토 요건에 맞춰 잘 재단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구호성 립서비스를 그치고, 자신의 선거책자에 매니페스토형 공약을 설득력 있게 담아야 한다.

둘째, 유권자는 옥석을 구별하듯 고품질 공약을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심성 공약인 경우 이미 훤히 알고 있다는 경계의식을 후보자에게 심어줘야 한다. 투표란 단순히 정치인 한 명을 뽑는 것이 아니다. 한 표를 던져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인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시민단체나 언론사는 공약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향후 공약 이행 여부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매니페스토가 후보자 선택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정치인을 다음 선거에서 솎아내는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8대 국회의원선거의 투표율이 46.1%라고 한다. 이처럼 저조한 것은 선거 때마다 허투루 내뱉은 공약에 실망한 유권자의 체념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올해는 20년 만에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는 '선거의 해'다. 각 정당은 쇄신이란 이름을 내걸고 새로운 당명, 새로운 정책 그리고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 낼 인물을 고르느라 바쁘다. 정치인들은 예비후보등록을 마친 후 갖가지 선거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권자의 검증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매니페스토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다지자. 그리고 매니페스토 잣대를 들이대 공약들을 꼼꼼히 따져보자. 투표율 제고 뿐만 아니라, 한국정치가 한단계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니페스토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 다가오는 양대 선거가 후보자의 자질과 비전, 공약들이 올바로 제시되고 정확하게 평가받는 정책선거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