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회 / 사회부 차장
얼마 전 '초한지(楚漢志) - 천하대전'이라는 영화를 봤다. 삼국지, 수호지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역사 소설인 초한지를 영화한 것으로 진나라 말기 초(楚)나라 항우(項羽)와 한(漢)나라 유방(劉邦) 부대 간의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묘사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봤지만 흥행에 실패한 것이 좀 아쉽다.

그런데 '초한지 - 천하대전'이라는 다소 식상한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것이고, 영화의 원제는 '홍문연(鴻門宴) 전기(傳奇)'이다. 이는 홍문(鴻門)이라는 지역에서 열렸던 연회(宴會)에 관한 일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인데, 항우가 당시 라이벌로 떠오르던 유방을 암살하려는 계획이 바로 홍문연에서 진행됐던 것이다.

사실 항우와 유방을 비교해보면 기본 출신성분에서부터 둘은 차이가 많이 난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기상)로 대표되는 항우는 원래 초나라의 대단한 명문가 자손이다. 팔척장신(대략 185㎝)에 힘이 장사였고, 어릴적부터 검술을 좋아했으며 여기에 귀족으로서의 세련된 매너까지 갖췄다.

반면 유방은 미천한 출신에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건달에 가까웠다. 유방(劉邦)이라는 이름은 한나라의 황제가 된 다음에 개명한 것이고, 원래는 '유계(劉季)'라고 불렸다. 계(季)는 이름이라기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막내', '막둥이'란 의미로 유계는 결국 '유씨네 집안 막둥이' 정도 되는 의미다.

아무튼 이 두사람은 진시황이 죽고 진(秦) 나라가 몰락의 길을 걷자 각각 반란군의 지도자가 돼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다. 항우의 부대는 세력의 규모나 전투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방의 부대를 앞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천한 출신의 유방이 귀족 출신의 장군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리더십의 차이였다.

항우는 처음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람을 이끌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었던지, 책사들의 말을 잘 듣지 않았고, 민심을 읽는데 실패했다. 항우의 책사인 범증(范增)은 당시 가장 뛰어난 지략가로서 점점 세력이 커 가고 있던 유방을 제거해야만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홍문연이라는 연회를 열어 유방을 암살하라고 지시했던 것인데, 항우는 결과적으로 유방을 죽이는데 실패했으며, 20만명이나 되는 진나라 포로들을 땅에다 생매장 함으로써 민심을 완전히 잃게 된다.

반면 유방은 책사 장량(張良)의 말을 듣고 다소 비굴하긴 하지만 항우에게 갖은 아부를 떨면서 결과적으로 홍문연에서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각종 제도를 간소화시켜서 백성들의 경제적·육체적 부담을 덜어줬고, 포로를 죽이기보다는 그들을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나갔다.

사기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따르면 유방은 황제가 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계책을 짜내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며, 백성을 위로하고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고, 백만대군을 통솔하는 일은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을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천하를 얻은 것이다."

올해는 4월 11일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고, 12월 19일에는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은 유방이 한 말과 행동에서 분명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