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아름다운 성취를 위한 영양조절인 다이어트와 달리, 단식은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의 역할을 수행한다. 상사병을 앓는 연인들은 식음을 전폐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백이숙제는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스스로 굶어 죽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십수차례의 단식투쟁으로 마침내 인도의 독립을 이루어냈다. 지율스님은 천성산 도롱뇽을 위해 5차에 걸쳐 300일이 넘는 단식으로 노무현 정부의 진땀을 뺐다. 먹어야 사는 인간이 곡기를 끊는 것은 죽음을 불사한다는 것이고, 죽음을 불사한 주장이니, 명분과 여론의 지지만 따른다면 아무리 거대한 권력이라도, 단식의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한국정치에서도 단식투쟁(hunger strike)의 역사는 화려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의 단식으로 야당 재건에 성공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단식투쟁으로 91년 지방선거라는 결실을 거두었다. 하다못해 1995년 내란죄와 반란죄로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택한 게 단식이었다. 우스운 것은 쿠데타 동료이자 같은 기간 교도소 동기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콩밥'을 싹싹 비웠다는 점이다. 그래서였을까. 전 전 대통령은 나중에 단식을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짓"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하니, 공연한 짓을 했다는 자책이 아니었을까싶다. 어차피 재판정과 역사의 단죄는, 굶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게 같았으니 말이다.

최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중국 정부의 탈북자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다 11일만에 병원으로 이송됐다. 탈북 새터민들과 국내 체류 외국인들이 동참했고, 연예인들도 합류했다. 그녀의 단식에 동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보세력의 동참을 호소하지만, '노무현 촛불'과 '광우병 촛불'은 답변이 없다. 심하게는 '나꼼수'의 조롱이고 점잖게는 야당의 '침묵'이 반응의 전부다. 배우 차인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좌우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인권마저도 전략적 선택과 진영논리에 가두어 버리는 좌우의 대립 앞에선 무력하다. 밖에서 볼 때 참으로 기이한 나라요,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이요, 우리 아니겠는가.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