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희 /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토요타 자동차로 유명한 나고야에 메이조(名城) 대학이 있다. 토요타 방식이라는 경영 기법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 지역의 대학 교수들이 한국의 학자들과 교류를 하자고 먼저 연락이 왔다. 지난 2월말에 융합의 학문을 추구하는 대학에 걸맞게 도시정보학과에서 경제, 지역개발, 복지, 환경,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방문하여 자신의 문제점들을 한국의 사례와 비교하는 세미나를 하였다. 그리고 두 군데를 방문하고 싶으니 소개하여 달라고 하였다. 하나는 삼성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였다. 경제와 정치의 대표기관을 선정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이들이 소니에 비해 삼성이 나은 점을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고급 일본어를 구사하는 홍보직원이 잘 짜여진 일정을 통해 설명을 하는 것을 두고,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화 된 과정이 인상적이라는 설명을 했다. 하나의 사례를 두고 비약하는 느낌은 있었으나, 한국 경제의 발전에서 우수한 인적 자원이 기여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이들은 소니가 스마트 폰 시장에서의 진입이 늦어 고생하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하는 듯했다. 지금은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의 트렌드를 빨리 찾아내고 이를 제품화하는 발 빠른 변화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된 시대이다. 반면 일본은 장인정신에 기초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경쟁력으로 안주하고 있었다. 물론 산업사회에서 이러한 기술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본이라는 섬에 갇혀 자신의 기술만 강조하다 국제적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갈라파고스 섬의 생명체처럼 대륙의 진화와 별종으로 가고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국회를 방문하면서 내심 걱정했다. 건물을 설명할 수는 있으나 정치 과정과 관련하여 보여 줄 것이 없다는 자격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분야가 정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 정치의 계절에 정치 신인이라고 등장하지만, 그리 신선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거론되는 후보들을 보노라면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 줄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국정을 논의할 철학과 의지를 가진 인사가 모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문자 자판기를 누르는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손가락의 무게만큼이나 정치권의 비중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일본인 학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으로 설명했다. 일본은 시민이 정치에 혐오감을 가지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정치발전을 주도할 추진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은 다이나미즘(dynamism), 즉 동력(動力)이 있다는 것이다. 행정인이나 기업인이 오랜 시간을 두고 경력을 관리하면서 전문가가 양성되는 과정에 비해 우리의 정치권은 세대 교체의 호흡이 너무 빠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갈등이 정제되지 못하고 거친 모습 그대로 정치권에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본인 학자들은 문제를 덮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고 해석을 하였다. 사실 엘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사회의 변화 속도를 설명하면서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달려 나갈 때, 정치는 시속 5마일로 달리고 있어 발전하는 사회의 걸림돌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어느 나라이든 정치권의 비효율이 쟁점이 되어 있기는 하다. 한국 사회 역시 정치권의 발전 속도가 늦기는 하지만, 시민사회가 정치의 발전을 주도하고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 학자가 삼성과 국회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변화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발전의 방향을 찾아내려는 과정과 노력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것이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가변성을 재촉하여 혼란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러한 치열한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발전하여 왔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의 두 번 선거를 통해 선진국으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권력이동의 시기에 새로운 사회를 창출하기 위한 산고(産苦)를 감내할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