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세상 봄은 나를 돌려세운채 지나가 구름과 바람에게 대화하고 하늘아래 대지를 호흡하자

1)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안양시 석수동이었다. 1980년대 초반 그때의 석수동은 안양시 외곽의, 도시도 농촌도 아닌, 조금은 어정쩡한 마을, 특별히 세련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달리 수줍음이 짙지도 않은, 그런 곳이었다. 안양천 굽이를 맞닿으며 비산비야(非山非野)의 구릉지들 사이로 더러더러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며, 채마밭들이 주택가 뒤로 쉽사리 발견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마을에는 봄 오는 정경이 오감으로 다 와닿는다.

그 해, 돌 반이 지난 첫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나는 봄나들이를 갔었다. 집근처 밭두렁으로 나오다가, 불쑥 수리산 자락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곳 어디 양지 바른 곳에서 우리 세 가족이 쑥을 캐고 싶었다. 아이는 겨우 걸음을 기우뚱거리며 걷는다. 쑥 캘 채비를 하고 큰길로 나오니 마침 수리산 종점행 시내버스가 온다(그 무렵 나는 차가 없었다). 버스에 오르니 우리는 수리산 너머 어딘가에 오고 있는 봄을 온통 몸으로 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 봄나들이는 우리들 마음만 봄에 기울어 있을 뿐, 산뜻하지는 못했다. 버스에서 막상 내려보니, 아직 바람 끝이 차다. 여기저기 조금은 황량한 겨울의 끝자락 심술이 남아 있다. 도로는 포장되지 않아서 바람에 황토 먼지를 일으킨다. 아이는 넘어지고 뒤뚱거리다 지치는지 잠을 청한다. 둔덕에 아기 쑥들이 돋아나 있었지만 너무 어렸다. 아내는 사진 몇 장을 소중하게 찍는다. 그 와중에도 저녁 국거리만큼의 쑥을 간신히 캐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아내도 아기와 함께 혼곤한 잠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까 멋있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봄나들이라기에는 2%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봄나들이가 좋다. 다른 날에 제법 멋과 품위를 살려가며 봄 구경 꽃구경을 가본 적도 없지 않지만, 이 날의 봄 행차가 내 기억의 리스트에서 단연 일등이다. 그 해 봄 내가 쑥 캐러 갔던 곳에는 이후 지금의 산본 신도시가 들어섰다. 아내와 아기가 걸어갔던, 그 '봄으로 가는 길'은 어디쯤이었을까. 나는 아침저녁으로 이 부근을 지나 출퇴근하면서 그해 봄 쑥 캐러 갔던 풍경을 떠올리면, 스스로 마음의 고양(高揚)을 만끽한다.

▲ 박인기 / 경인교대 국문과 교수
봄이 주는 진정한 공덕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늘과 대지를 온 감관으로 바라다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먼 곳을 오래 바라다보는 일은 내 안의 울퉁불퉁한 욕망과 다툼들을 화해로 다스려가게 한다. 또한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것은 그것을 향하여 다가가려는 사랑의 기운이 내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감수성으로 봄을 바라본다. 봄, 그것은 시간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하고, 우주의 운행이기도 하고, 내 안의 기운이 내 밖의 운기와 만나는 큰 호흡의 마디이기도 하다.

2) 남에게 좀체 눈길을 주지 않는 세상이다. 전철이나 버스를 올라타도 정말 눈길 하나 맞추는 사람 없다. 스마트 폰에 흠씬 빠져서 오로지 거기에만 눈이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신을 숭배하는 심오한 의식에라도 참여한 듯, 너나없이 목을 앞으로 빼어 구부리고 눈은 꼼짝 않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한다. 차창에 지나치는 풍경은 이미 현실에 없는 피안의 세계라도 되는 듯하다. 그러니 그들의 세상은 오로지 스마트폰으로 통하여만 길이 나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절에 다 큰 조카 아이들이 큰집에 모여도 잠시 인사를 나누는 둥 마는 둥, 각기 스마트폰 삼매에 들어 있다. 정작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방해하지 말라는 듯, 이어폰을 귀 안으로 더욱 단단하게 밀어 넣고는 스마트폰 안의 세상으로만 소통하려 한다. 그럴수록 '나만의 체험, 나다운 사유(思惟)'를 길어 올리기는 쉽지 않다. 남의 편견도 내 통찰인 양 착각하기 좋다.

무엇보다도 우리들 감각의 변덕이 심하여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동안도 무엇 하나 끈기 있게 응시하지 못한다. 공연히 불안한 듯 여기저기 부산하게 스마트폰의 공간을 돌아다닌다. 눈길이 끌리면 기계적으로 들어간다. 그런 유혹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것이 스마트폰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거리 황단 보도를 지나면서도 스마트폰에 눈길을 박고 걸어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과 부딪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그걸 들여다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이미 온 세상에 와 있는 봄은 나를 저만큼 돌려세운 채 지나간다.

봄이다. 봄을 느끼는 마음은 천지를 향하여 내 감관 모두를 열어 개방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구름과 바람에 대화를 구하려는 마음, 대지에 귀 기울여 생명의 싹을 틔우려는 풀과 나무들에 내 핏줄을 이어보려는 상상력으로 날아오르자. 봄이 오는 길목으로 나가자. 그래서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자. 갇히고 움츠리고 음울했던 것에서 풀려나서 하늘 아래 대지를 호흡하자. 이 모두가 우리의 내면을 얼마나 청신하게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