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문·사회 오디세이-중국을 움직이는 관행과 문화'라는 타이틀 아래 인천대학교·인천시국제교류센터·경인일보 등이 공동으로 마련하는 '인천시민강좌' 세 번째 시간이 14일 오후 7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한국씨티은행빌딩에서 진행됐다. 이날은 장호준 인천대 HK연구교수(사진)가 '모방의 문화와 경제:짝퉁 천국의 재조명'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 다음은 강연 요지

우리나라에서 중국은 흔히 '짝퉁 천국'으로 불린다.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는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모조품 생산의 중심지라는 의미에서 '해적 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짝퉁 천국'이나 '해적 국가'라는 별명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과 세계 지적재산권 구도의 복잡한 정치 현실을 일면적인 윤리적 잣대로 재단하여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위험이 뒤따른다. 중국의 모방복제 관행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은 무엇일까.

1990년대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은 다오반(盜版) 행위로 대표된다. 다오반은 영화 및 음악 VCD와 DVD, 그리고 윈도우 시리즈와 같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불법 복제판을 일컫는 말이자 동시에 저작권·상표권·특허권 등으로 보호되는 지적재산권 제품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행위 일반을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중국 전역에 만연한 다오반 현상은 1980년대 후반부터 10여년간 지속된 중·미 무역분쟁의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세계무역기구(WTO)의 관련 요건을 상회하는 지적재산권 법률 체계를 구축했다.

200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의 모방복제 대상의 중심이 휴대폰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휴대폰이 산자이(山寨) 휴대폰으로 불리면서, 산자이는 모방과 복제를 지칭하는 또다른 유행어이자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다오반과 산자이 현상은 모방·복제 행위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는 상당히 다르다. 전자가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인 반면, 후자는 법률의 경계에 걸쳐 있어 합법·불법을 가리기가 모호한 행위영역에 속한다.

또한, 다오반 현상은 기존 브랜드를 몰래 모방하고 가능한한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경향을 띠는 반면, 산자이 현상은 드러내놓고 모방하고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복제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로 인해, 일부 산자이 제품들에는 혁신적인 요소가 드러나기도 하며, 다오반과는 달리 산자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더 일반적이다.

모방·복제 관행은 양날의 검과도 같다. 후진국들과 후발기업들은 모방과 복제를 통해 선진국 및 선진기업들의 기술을 짧은 시간안에 저비용으로 습득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술적·문화적 종속관계에 처해질 수도 있다. 지적재산권 제도와 그 활용의 문제 역시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19세기 후반 영국인들이 대표적인 '해적국가'로 지목했던 미국이 10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지식재산권의 옹호자가 되었다.

30~4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일본 기업의 제품을 모방했던 우리 역시 이제는 중국을 짝퉁국가라고 손가락질한다. 중국의 모방복제 현상은 확실히 윤리적인 잣대로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중국 법률체계의 변화, 한·중간의 정치적 역학관계, 중국 사회와 문화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이해함으로써 이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진오기자

인천국제교류센터·인천대·경인일보 공동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