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의 현안을 풀어주는 대책으로 기업가정신을 육성하는 것 만한 방책이 없다. 한국경제의 당면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유망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과제도 모두 기업가정신에서 잉태됨을 절감해야 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정치가들이 외면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대학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의하는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청년들에게 창업을 강권하지 못하는 비애(悲哀)를 절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가로서 감당해야 할 위험과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젊은 인재들이 기업가로서 겪을 험난한 경로를 생각하니, 기업가정신이 중요함을 알면서도 유능한 동량(棟梁)들에게 창업자로서의 인생을 권장할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 것이다. 한국경제에서 창업자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상당하다.
특히 자신이 창업한 기업이 실패했을 때 개인이 그 위험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높은 위험이라면 창업자로서 인생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가 선도경제로 도약하려는 현 시점에서, 창업기업가의 위험에 대해 합리적인 조정이 진정으로 시급하다.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젊은 인재들이 대학문을 나서면서 대기업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창업 성공을 높이는 것과도 연관된다. 현재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책은 일단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다. 거기서 일정기간 산업관행과 실무를 학습하고, 또 구체적인 판로와 사업아이템을 포착해서 자신의 사업체를 시작하는 경로가 성공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이런 개인경력 인센티브 체계에서는 고급인력이 대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욕구를 저지할 수 없으며, 결국 대기업 중심의 인력수급을 깰 수 없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에서의 도약을 꿈꾸는 정치가라면, 기업가정신을 저해하는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앞장서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끌어올리는 승부처가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기업가를 말할 때 정치적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기업가에는 재벌창업자들의 이미지가 적지 않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주영 혹은 이병철과 같은 제1세대 기업가들의 자수성가(自手成家) 스토리에는 흥미를 보이지만, 현대와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에는 잿빛 이미지가 덧칠되어 있다. 과거 정부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아 성장한 대기업, 또 그들의 성공이 중소기업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무언가 부족한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채색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중한 자산으로서의 기업가들도 많다. 스스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해서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이미 많다. 예를 들면, 기술창업을 통해 경쟁력이 높은 벤처기업을 이룬 변대규, 황철주, 김택진 등의 스토리들은 젊고 유능한 잠재창업자들에게 큰 용기를 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앞 세대의 기업가들과는 달리 과도한 정부지원을 받았던 도덕적 부담도 없다. 소위 과거 가난했던 시절 집안의 맏아들과 같이 자원을 집중해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성공스토리에 당당할 수 있으며, 그래서 기업가로서 존중될 수 있다. 이런 자부심과 당당함이 자리 잡았으니 정치가들도 청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말하는 데 과감해져도 될 것이다.
현 시대는 한국 기업가들이 이룬 결실과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화두를 던져주고 있으며, 또 나아가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창조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제대로 읽는 큰 정치가들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