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함 폭침 2주기를 앞두고 지난 21일 오전 평택 2함대에서 천안함 2주기 초계함 전투태세 훈련에 앞서 천안함 생존장병들이 어떤 적의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수 대위, 허순행 상사, 공창표 하사, 김효형 하사. /하태황기자

천안함 유족들의 시계는 2년 전에 멈춰 섰다.

지난 2년간 유족들은 수시로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아가 각자의 아들과 남편 묘의 비석을 닦고 또 닦으며 천안함 침몰 전 생존 당시의 모습을 떠올렸다.

천안함 전사자들의 유품 2천900여점이 보관된 평택 서해수호관에도 유품을 보며 전사자들의 온기를 느끼려는 유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장병의 가족들은 천안함 침몰사건 2주기(3월 26일)가 더욱 고통스럽다. 여섯 장병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 장병은 산화자(散華者·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로 불린다. 2년 전, 천안함 산화 장병들은 시신 대신 입대 당시 군에 냈던 머리카락이나 손톱, 옷가지 등 유품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천안함 산화 장병들 가운데 최한권 원사와 강태민 상병은 인천에 거주했었다.

고 강태민 상병의 아버지 강영식(53)씨는 "지금도 아들이 어딘가에 있다가 (내 앞에)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다른 유가족들은 시신을 태우며 아들을 떠나보냈지만 우리 아들은 찾지도 못해 사진과 유품을 태워야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아들의 유품을 간직하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내가 아들의 유품을 보고 계속 힘들어 할 것을 우려해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유품에 불을 붙였다.

홍익대는 지난달 22일 이 학교를 다녔던 고 강태민 상병에게 명예졸업장을 줬다. 강씨는 "누군가 아들을 배려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고 말했다.

고 최한권 원사의 아내 이재신(39)씨는 "더 이상은 그 때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양해해 달라"며 전화 통화를 거부했다.

이씨의 한 지인은 "이씨는 지난해 신학대에 입학했다"며 "교회에서 기도도 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 서승원 중사의 어머니 남봉임(45)씨는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자택의 방 하나를 아들 몫으로 비워 놓았다. 남씨는 사진 등 아들의 유품으로 그 방을 채웠다.

남씨는 "아들 방의 문을 열면, 2년 전 그 순간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며 "아들 방을 만들어 놓으면 아들이 돌아올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