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운 / 소설가
용인에 내려온 지 20년이 넘었다. 80여만 명의 외지인들이 이곳 용인으로 몰려와 이제 인구 100만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이주할 때 인구가 8만여 명, 돌이켜보니 이주 러시가 어마어마했다.

그러다보니 엉망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주민 문화와 풍토가 워낙 강해 외지인들은 눈감고 귀막고 서울만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 많았다. 마치 청교도들이 발을 디딘 원시의 땅 아메리카처럼 질서도 없고, 관습도 없고, 전통도 없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용인시 외지인 80만 명은 눈이 있으되 용인을 바라보지 않고, 귀가 있으되 용인 소식을 듣지 않았다. 기실 내가 그러했다. 내 눈과 귀가 향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서울이고 난 용인에서 단지 숨을 쉬고 물을 마시며 잠을 잘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원주민, 토착민들이 시 행정부와 의회, 언론, 지역단체 등을 장악하고 용인을 이끌었다. 나같은 사람들은 의회의원 정도는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이면 영광스런 학력이던 저 옛날 '용인군' 사람들의 탁류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2010년에야 퍼뜩 깨달았다. 아, 여기가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내 자식의 고향이구나, 내 자식의 고향을 방치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결심하여 드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시민카페 '용인타임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굳이 언론사도 아니고 수다 공간에 불과한 카페를 만든 것은, 용인에 주소를 둔 대개의 언론사들이 정론을 못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실력과 경험이 부족해서 못하기도 하고, 자금이 부족해서 못하기도 한다. 게다가 직필은 상상도 못한다. 푼돈에 기사가 거래된다는 말이 들리고, 그러면 신문에는 정작 시민들이 알고 싶어하고 궁금해하던 소식이 실리지 않는다.

시민들의 알 권리가 도둑맞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몇몇 언론사 기자들은 정액급여조차 없다. 기자라고 하면 월급 받아 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서야 광고 받아 산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사회면 뉴스에서 사이비 언론, 사이비 언론하던 것이 이곳에서는 일상이었구나 하는 걸 안 것이다.

직업 특성상 막상 지역언론들을 바라보니 편을 나누고 당을 짓는 것은 기본이고, 곡학아세(曲學阿世)에 가장 나쁜 지록위마(指鹿爲馬)까지 이뤄졌다. 그러다보니 천문학적인 돈이 경전철로 새나가는 데도 눈감고, 난개발이 이뤄지는 데도 문법 맞춤법 없는 글에 아까운 잉크를 들이부었다.

기사는 거래수단이 되거나 흥정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무조건 들은대로 본대로 쓰는 것이 기사다. 언론은 정론직필의 길을 갈 때 언론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흉기가 된다.

오늘 점심에 먹은 메뉴나 휴일에 보고온 꽃 이야기 등을 나누자고 만든 시민카페가 나서서 정론직필 운운하는 이 시대가 잘못된 것이다. 마치 정치가 잘못되어 민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언론이 제대로 안해주니까 카페나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이 대 언론 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시민카페 용인타임스 운영진들은 모두 직업이 따로 있고, 회원들은 단지 자투리 시간에 취미생활 삼아 글을 쓸 뿐이다. 시민카페는 돈에 유혹당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밤새 일해가며 틈틈이 댓글을 달고, 정보를 정리하는 분도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갈 것이다. 회원들이 다 만나려고 해도 밥값이 무서워 못만난다. 그래서 서로 얼굴도 모른다.

시민카페의 언론 민란이 가능할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비록 회원들 색깔이 워낙 다양해 정론은 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일단 직필만은 칼날처럼 송곳처럼 나타나고 있다. 본대로 들은대로 가감없이 쏘아버린다. 나비처럼 날다가도 벌처럼 쏘고, 벌처럼 쏘다가도 나비처럼 날개를 펄럭일 것이다. 꾀꼬리처럼 울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직필이고, 직필은 태풍의 눈처럼 뻗어나가 거짓을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힐 것이다. 그래야 카페는 다시 카페가 될 것이고, 언론은 다시 언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