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는 에머슨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초절주의자이면서 동양사상에 깊이 심취한 바 있어 노장(老莊)의 무위,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가 생전에 소유한 것이라고는 보트를 제외하고는 텐트 하나뿐이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세속적 명리를 멀리하고 28세가 되던 1845년 고향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여를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소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말하듯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숲속으로 들어갔다. 구태여 소로에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자신의 저서 '월든'에서 시종 강조하고 있는 '단순함'과 '느림'의 미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월든'에는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남보다 앞서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이 귀 기울여야 할 의미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문명생활이라고 하는 복잡하고 험난한 바다 한 가운데 있다. 국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진 조직체가 되어 있어 자기가 쳐놓은 덫에 스스로가 걸려든 형국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사치와 낭비, 목표 부재로 인하여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른 이 국가와 가정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구제책은 단순함과 뚜렷한 목표의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무질서하게 난립해 있는 우리 정부의 수많은 정책 과제들, 행정부가 바뀌면 조령모개 식으로 언제든 바뀔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사업들,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엄청난 재정과 자원 등,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목표 의식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뚜렷한 목표 의식을 통한 단순함의 미학을 강조하는 19세기의 현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는 또한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는 왜 우리들이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반문한다.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무도병 환자처럼 잠시도 머리를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국가든 가정이든 우리 개인이든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지식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수한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 하나라도 놓치면 혼자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정신은 깨어 있기에는 너무나 피로해 있어 최근에는 우울증, 자살 등 병리적 징후가 점점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철학자에게는 소위 뉴스라는 것은 모두 가십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롤러코스트를 타듯 초고속으로 달리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무엇을 보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가장 빠른 여행은 도보 여행'이라는 소로의 경구를 되새기고 싶다. 우리는 진리가 저 먼 어떤 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오로지 미래를 향하여 서둘러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리는 반드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매 순간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영원처럼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 겨울의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쑥과 냉이가 긴 긴 잠에서 깨어나 사방에서 소곤거리며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새싹들의 반란은 단순하고 느리지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질서를 향한 자기실현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단순하고 느리게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진정 자신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강한 생명력이 될 것이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동자에서 새싹들과 같은 우리 시대의 희망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