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다수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또 사회의 방향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록 이 과정에서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많은 비용을 수반하게 되지만, 그것은 사회의 발전을 위한 학습비용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 당일의 한 표 행사뿐만 아니라, 선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점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정책공약 선거 운동이 그러한 관점에서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정당의 공약을 보면 복지 경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특징이 있다. 복지 도입에 속도의 완급 차이가 있을 뿐이고, 복지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화두가 되어 있다. 정치학에 중간투표자 이론이 있다. 극단적 진보나 극단적 보수를 표방하면 가장 많은 표를 형성하고 있는 중간층의 표를 잃게 되기 때문에 선거를 많이 치르다 보면 정당 간 차이가 없어지고 중간 지점에서 수렴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중산층이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마저 복지의 수혜자라고 착시 현상이 있거나, 아니면 중산층이 사라진 것이다. 아니면 성장의 과정에서 수혜자이었던 이들이 기꺼이 사회를 위해 재원을 분담할 용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경우 복지 제공자에게 정확하게 부담분을 제시하고 용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정당은 공약을 통해 향후 부담해야 할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신규 진입을 만들어내는 노력과 함께 현재 일하고 있는 세대에 대한 우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방향, 지속가능한 성장과 복지를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갈 필요가 있다.
간혹 선거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당 간 경쟁이나 후보자간 경쟁에 대해 불편해하는 입장도 있다. 갈등이 노정되어 사회의 분열을 야기할 것을 우려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편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던 많은 쟁점이 부각되는 것은 필요한 현상이다. 이를 통해 지나간 문제점도 파악되고, 그리고 이를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하인리히(H.N. Heinrich)는 5천여 건의 사고(재해)를 조사한 결과 '1-29-300'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건의 '대형사고' 뒤에는 29건의 '가벼운 사고'가 있고, 그 뒤에는 300건의 '작은 실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 징후를 통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연과 사회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하다가 큰 사고를 당한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타성(지금까지 별일 없었는데), 오만과 역량 과신(내가 누구인데), 근시안(눈앞의 경쟁만 보는 짧은 시야) 등이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상적인 우리의 조직 문화나 생활양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 실수가 반복되고 이로 인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다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경고하는 법칙이다.
선거의 계절에 새삼스럽게 하인리히 법칙이 생각난 것은 우리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작은 사고들을 이번 기회에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어 사회의 발전을 위한 동력으로 작동하는 기제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지역적 연고에 근거한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 선거도 극복하면서, 정책을 통한 선거가 정착되어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럴 경우 결과적인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과정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