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호 / 아주대 경영대학장겸 대학원원장
한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여러 개 있어 근로자들이 골라서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제도가 복수노조다.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초 개발경제가 시작되면서 형식적으로는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상당한 제약을 가하고 있었고,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는 이 복수노조 역시 금지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이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고 1997년 복수노조제도를 도입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노사문제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계에서는 복수노조가 도입되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예상하고, 복수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에 다수의 노조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단체교섭을 할 때는 창구를 단일화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마련이 쉽지 않았다.

결국 제도를 도입하되 그 시행을 2002년 1월 1일로 유예했고, 그 사이 노동부장관이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루도록 했다. 그런데 2001년이 되어도 창구단일화 해법을 찾지 못했다. 노동부장관 혼자서 할 수가 없고 노사가 합의를 해줘야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법시행은 계속 유예되었고 급기야 2009년말에 이르러서야 창구단일화에 대한 해법을 찾았고 그 결과 2011년 7월 1일부터 13년 동안의 논의를 종결하고 복수노조제도가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복수노조의 시행을 앞두고 경영계와 노동계는 양측 모두 비상이었다.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노사관계가 다시 파행으로 가지 않을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노노간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그래서 복수노조제도 도입은 "산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또는 "노사관계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2011년 7월 1일이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노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7월 1일 이후 100일 동안 498개의 노조가 설립 신고를 했다. 그 전까지는 노조의 숫자가 연 100개 정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증대는 순전히 복수노조제도 도입 효과라 할 수 있다. 신설 노조 대부분(82%)은 기존 노조에서 분리된 것이고, 18%만이 순수하게 새로 설립된 노조였다.

그러니까 기존 노조의 활동이나 노선에 불만을 가진 근로자들이 노조를 따로 만들어 경쟁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고 또 시간이 흐르자 신설 노조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최근까지 신설노조는 600개 정도에 이르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도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최대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복수노조제도는 처음 우려와는 달리 조용히 안착된 것으로 보인다. 올 봄 단체교섭 시즌만 무난히 넘기면 복수노조제도는 자리잡았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복수노조제도의 도입이 큰 문제없이 연착륙되었다고 해도 이 제도가 갖는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사회는 점점 단순사회에서 복합사회로 가고 있으며, 획일화 사회에서 다양화 사회로 가고 있다. 복수노조는 바로 우리 사회의 다양화를 반영하는 것이고, 다양화라는 거대한 메가트렌드가 복수노조라는 분출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노동자들도 하나가 아니고 다양한 소집단이다. 기업이나 다른 조직도 그냥 하나로 보면 안 된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사고가 다른 소집단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소집단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진 것이다. 고용지위로 볼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전혀 다른 이해관계 집단이고, 생산직, 영업직, 연구개발직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는 내국인과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남녀간의 문제도 그렇다. 노동계도 이런 다양한 노동자집단의 요구를 개별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체질을 갖추어야 한다. 정규직의 이해만 대변하면 비정규직은 따로 노동조합을 만들 것이고, 생산직만 대변하면 연구직은 따로 노조를 만들 것이다. 조직도 근로자들을 과거처럼 획일적으로 대하는 것은 이해를 달리하는 소집단으로 하여금 노조를 만들게 하는 빌미를 주는 것이다. 다양성의 확대에서 비롯된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 줄 아는 역량이 절실해졌다. 복수노조 시대는 곧 다양성관리의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