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도 같은 선거가 끝났다. 거리 곳곳을 누비던 형형색색의 무리들도 어느새 사라지고, 총성이 멎은 듯 온갖 소음들도 뚝 그쳐버렸다. 막말 논쟁, 보수와 진보,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간의 대립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한층 더 성숙해진 민주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도 별 탈 없이 평화적으로 주권을 행사했고, 상대에 대한 고소 고발 등 고질적인 병폐도 많이 줄어들었다. 정치의식이 성숙하면서 지지하는 정당과 노선은 달라도 마음껏 비판했고, 입장을 달리하고 있음에도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국민들의 정치를 바라보는 의식수준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느낀다.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정치를 하는 선량(選良)들이 더 걱정될 뿐이다. 당선만 되면 표를 준 유권자들을 잊기 일쑤다. 40일 남은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6천639개 법안이 쓰레기통으로 자동 폐기될 위기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각종 특권에 비해 국민들이 이들에게 거는 기대치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금배지 무게는 6g에 제작비 2만5천원에 불과하지만 수반되는 특권은 무수하다.

헌법으로 보장된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 입법권이다. 현행범인이 아닌 이상 회기 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기업·공기업, 이익단체, 정부 공무원들이 설설 긴다. 그만큼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특권보다 더 놀라운 혜택도 있다. 월 세비 624만5천원에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정근수당과 명절 휴가비 등 각종 수당을 포함하면 연간 1억2천만원 이상의 연봉을 지급받는다. 

4급 2명을 포함한 9명의 보좌진에게 연간 3억6천880만원의 세금이 투입되고, 여기에 KTX 선박 항공기(비즈니스석)가 공짜다. 국회의원 1인당 6억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된다. 게다가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은 평생동안 월 120만원씩의 연금을 지급받는다. 이 법안이 2010년 국회를 통과했을 때 여야 통틀어 고작 2명만이 반대했다. 앞에 열거한 것 이외에도 200가지의 특권이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이들의 의무는 어떨까. 헌법상의 청렴의무, 국익우선의무, 지위남용금지의무, 겸직금지의무를 가지며, 또한 국회법상 품위유지의무, 국회의 본회의와 위원회 출석의무, 의사에 관한 법령·규칙 준수의무와 정치적·법적으로 특수한 지위에 있으므로 일반 공무원과는 다른 특수한 의무를 진다라고 돼 있을 뿐이다. 다분히 추상적이다. 

그래서 이들이 누리는 권한과 혜택을 줄이고, 나아가서는 국회의원의 숫자를 반으로 줄이자는 여론도 일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는 그 특권에 비해 제 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 당선자들이나 대선 주자 등 정치인들은 이제 허리 띠를 졸라매는 각오로 공직생활에 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국민들 곁에 다가설 수 없다. 서민을 위한 정치는 한낱 구두선(口頭禪)에 그칠 뿐이다. 운영 경비도 최대한 줄이고, 비행기 좌석등급도 낮춰 서민생활을 체험해야 한다. 평균 재산이 30억원을 넘는 국회의원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괴감을 지울 수 없다. 자신들과는 다른 신분계층으로 구분지어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다.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할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또 정치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국민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국민들을 섬길 때 생산성 높은 국회, 일 잘하는 국회의원도 되는 것이다. '백성들을 위한 정직한 마음과 정책을 가지라'는 다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국회의원들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