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회 / 사회부 차장
전국시대 말기 제(齊)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천하의 여러가지 재주가 있는 수 천 명의 식객을 거느렸다. 오늘날로 치면 자신의 싱크탱크(Think Tank)를 운용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현명한 정치활동을 했던 셈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하루는 '풍환(馮驩)'이라는 사람이 맹상군을 찾아온다. 그의 행색은 남루한 편이었다. 하지만 맹상군은 그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풍환을 좋은 방에 묵게 하고, 당시로서는 고급 음식인 생선요리를 대접했다. 하지만 풍환은 1년 동안 눈에 띌만한 정치적 계책을 내놓지 못해 맹상군의 눈밖에 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맹상군의 식객은 계속 늘어나 3천 명에 달하게 됐다. 국가에서 나오는 월급만 가지고는 식객을 모두 먹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맹상군은 동네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주며 이자를 받는 방식으로 식객 관리 비용을 충당한다. 그런데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맹상군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식객들에게 제안을 한다.

"누가 마을에 가서 주민들에게 빌려준 돈과 이자를 받아 오겠는가?" 그러자 그동안 눈칫밥만 먹고 있던 풍환이 자신있게 주민들의 빚을 다 받아오겠다며 나섰다.

풍환은 우선 술을 담그고 살찐 소를 사서 잔치 준비를 한 다음 돈을 빌려간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차용증을 일일이 대조해 이자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낼 수 없는 사람인지를 구분했다. 이자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자 납기일을 다시 정하고, 형편이 가난해 도저히 이자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차용증을 수거해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풍환이 차용증을 거두어 불 태워버렸다는 소식에 몹시 화가 난 맹상군은 풍환을 불러 즉각 항의한다. "내가 들으니 선생이 백성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차용증을 수거해 불에 태웠다고 하던데 어찌 된 일입니까?" 이에 풍환은 태연하게 말한다. "그렇습니다. 술과 고기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마을 주민 전체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이게 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면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자 상환을 재촉한다면 그 압박을 감당할 수 없게 돼 결국 다른 고을로 달아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제가 한 행동은 백성들을 격려하고 군의 이름을 드높이는 일인 것입니다." 풍환의 답변을 들은 맹상군은 손뼉을 치며 풍환에게 감사의 말을 올린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일화다.

최근 경기 인천 지자체들이 전시성 사업과 무리한 토목·건축공사들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됐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자체의 수장들이라면 으레 시민들의 부채를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마땅한데도, 효용가치가 별로 없는 무리한 사업에 몰두한 나머지 수천억·수백억원에 이르는 부채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빚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 시민들이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세수는 더욱 줄어들어 재정 형편은 어렵게 될 것이다. 부디 위정자(爲政者) 들이 맹상군 열전에서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무시 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