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던 그의 '기적의 도서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해 줄 사람을 찾을 때 고려했다던 세 가지 사항이 무척 흥미롭다. 첫째, 돈을 최우선하지 않는 사람, 둘째, 공공의 가치에 헌신할 수 있는 사람, 셋째, 미적 감성이 탁월한 사람 등이었는데 이는 곧 '바보 건축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전에 집 한 채 없이 살았던 '바보 건축가'를 다룬 다큐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훈훈했고 바보였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했던 대로 그는 '지금' '여기', 현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문주의자였다. 현재가 없는 미래란 있을 수 없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유토피아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은 그의 말마따나 '대가병'이 있어 대가의 건축만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건축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작은 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개별적 발화(파롤 parole)'에 불과할 뿐 '전체가 공유할 소통의 언어(랑그 langue)가 부재'하다는 그의 판단은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철학에 따스한 인간적 시각을 제공한다.
구태여 말하자면 정기용은 인간과 자연과 건축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간을 그리는 지독한 휴머니스트이다. 그에게 건축은 기술이나 기예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타자와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인문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건축이 조형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는 이유이다.
그의 건축은 인간을 압도하지도 않거니와 인간이 그 공간 속에서 경외감이나 소외를 느끼게도 하지 않는다. 상하 위계를 전제하는 수직적 사고를 거부하는 그의 건축철학이 그가 만든 공간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의 건축물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작고 소박한 공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의 건물이 나지막한 이유를 알겠다.
사회가 요구하는 건축과 도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현재 우리가 생산해 내고 있는 건축과 도시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지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그의 삶에서 따스한 인간의 냄새가 난다. 필자는 정기용의 건축을 소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물을 짓기 전에 면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했고 그것을 실제 공간에 실현시켜 일종의 공공건물인 '안성면민의 집'에 목욕탕을 설치한 발상 역시 사람과 공간, 사용자와 건축물의 소통을 우선 고려하는 그의 인간적 자세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무주 부남면의 버스정류장은 비바람을 피하는 닫힌 공간인 듯하면서도 액자 모양의 창을 통해 들어온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고 동시에 자신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이웃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폐쇄된 듯하나 열린 소통의 공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건축가'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사람을 품 안고 있는 자연만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남산 산길을 들어서자 굽이굽이 하얀 조팝꽃과 흰 벚꽃이 연무처럼 펼쳐져 있다. 산길은 '당나귀길'이라고 했다던 정기용. 산길의 '갈지(之)'자 형태는 짐을 실은 당나귀가 산을 올라갈 때 곧바로 위로 향해 올라갈 수 없어서 생겼다는 그의 말처럼, 정기용은 길과 몸을 연관 지어 생각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그가 마련한 공간은 우리의 몸이 요구하는 실제 삶의 공간이 된 것이다.
정기용이 만들고자 했던 도시는 우리를 세계와 분리시키는 차가운 도시가 아니라 연무처럼 펼쳐져 세계와 우리가 하나가 되고 우리를 한없이 포근하게 감싸는 따스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의 말이 '파롤'이 아니라 소통의 '랑그'로 살아남는 이유이다. 그는 끊임없이 빈 공간 속에 그만의 그림을 그려 사람들이 이를 향유하도록 하고 '랑그'로 살아남아 그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무주 부남면의 버스정류장에 서서 액자 창으로 들어온 산을 바라보며 맵지 않은 짬뽕과 바싹 불고기를 원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떠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