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 객원논설위원,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도시 개발과 재건축 과정에서 문화유산 훼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지난해 대불호텔(중화루) 부지에 상업용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개항기 건축의 유구(遺構)가 발견되어 공사가 중지되고 부지 보존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최근에는 인천시 중구가 남한 최초의 소주공장이었던 조일양조 건물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건물의 보존가치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은 문화유산의 개념과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치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며, 문화유산과 관련된 정책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란 지속적인 문화 창조를 가능케하는 물적 매개물 혹은 상상의 원천을 말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세계 유산을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과 지구의 역사를 잘 나타내고 있는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결합된 복합유산으로 구분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다시 유적, 건축물, 장소로 구분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구전·무형유산·걸작품과 기록유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지정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통칭해 왔으며 "인위적·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서의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것"이라고 정의해 왔다.

이같은 정의는 고고학·건축학·미학적 가치가 현저한 문화재만 중시하고 여타의 문화자원을 경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도시 서민의 생활사, 근대 산업사와 관련된 유산이나 기록물의 가치도 중요하다. 특히 생활문화유산은 우리의 근대를 재성찰하여 미래를 조감하는 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도시 재기획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활문화나 산업유산과 관련된 유산들은 대부분 그 소중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것이 멸실된 후, 혹은 재생되어 다시 나타났을 때에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

세계적 명소가 된 프랑스의 오르셰미술관은 1939년 오르셰역이 문을 닫은 뒤 방치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활용책을 검토하다가 1986년에 비로소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보존 중심 정책에서 활용 중심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고학적 유물이나 근대 이전의 문화유산의 경우 보존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근대 문화유산의 경우 그 숫자도 많을뿐더러 시민의 주거와 생업과 밀착된 공간에 위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존 중심의 정책은 재산권이나 경제적 활동과 상충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이 경우 문화유산도 보존하고 유산을 활용하여 소유주와 지역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도시에 남아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은 유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문화적 콘텐츠이며, 도시 재생의 중요한 자료이다. 진정한 의미의 도시 재생은 지정 등록된 유무형 문화재는 물론 주민생활의 역사와 관련된 지역의 문화유산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때 가능하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도시의 경쟁력이란 그 도시가 온축하고 있는 문화 창조 역량, 문화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유·무형 문화 유산과 자원에 대한 종합적 조사와 재평가 사업을 통한 보존대상 유산 목록을 작성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 도시와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공인된 문화유산은 생성 능력을 잃고 현실 문화와 분리되거나 유물화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여 개발 과정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문화유산 보존은 정부나 지자체에 의존해서는 이룰 수 없으며, 문화유산신탁법에 의거한 문화유산보존 활동과 같은 민간 차원의 운동이나 주거지 근처의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관심을 가진 지역의 시민운동과 연계될 때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