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호화 아파트가 즐비한 송도경제자유구역 국제업무단지(송도IBD) 빌딩 숲 한복판에 대형 경작지가 등장했다. 어민생활대책용지(조개딱지 용지) 중 미개발된 주상복합용지 M2(약 10만㎡)블록이 채소밭으로 변한 것이다. 사유지인 이 땅 곳곳에는 '농사짓지 마세요', '형사고발 조치함'이란 내용의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경작자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땅을 일군다. 어민 생계 보상용으로 지급된 금싸라기 땅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곳에서 만난 경작자 상당수는 송도 주민이었다. 대우 푸르지오 월드마크, 현대 힐스테이트 등 어민용지(M1블록)에 개발된 주상복합 거주자와 인근 송도 자이 하버뷰에 사는 이들이었다. 18일 오후 3시께 힐스테이트 4단지 부근 경작지에서 만난 한 70대 할머니는 "힐스테이트에 살고 있다. 밤에 잠도 안 오고, 심심해서 고구마하고 감자를 조금 심었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2시께 만난 조성란(56·여)씨는 지난 1월 자이 하버뷰 13단지에 입주했고, 쌈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금씩 뜯어서 집에서 먹으려고 심었다"고 했다. 20일 오전 11시께 만난 양모(72)씨는 "여기서 (농작물이) 나오면 주변에 다 나눠주고 끝낼 거다. '단돈 10원이라도 벌어먹으면 내가 미친X'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양씨는 "행자부 공무원으로 35년 일하다 퇴직했다. 내 아들은 은행 과장, 사위는 대기업 연구원이다. 저기 보이는 할머니는 아들이 대학 교수다. 여기 노인들의 아들 의사, 교수, 변호사 많다"며 "내일이라도 이 곳이 개발된다면 당장 (경작을) 그만 둘 거다"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은 '경작보다는 개발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천 최고가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만 해도 집앞이 '송도의 로데오거리'로 개발된다고 들었는데, 그 땅에서 채소를 심고 있는 나도 한숨이 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천시는 1997년 송도, 동막, 척전, 고잔 등 4개 어촌계 어민 1천200여명에게 어민생활대책용지로 준주거용지 50평(165㎡)을 공급하는 우선매입권을 부여했다. 어민생활대책용지는 M1이 11필지, M2가 76필지, M3가 19필지다. 조개딱지는 1회에 한해 전매가 허용됐지만 송도국제도시의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불법 전매가 판을 쳤다. 조개딱지 호가가 급등하자 일부는 매수자에게 명의변경 비용(일명 '도장값')을 요구했고, 이와 관련한 소송도 많았다. 조개딱지 가격은 2007년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인천시내에서 송도2교를 넘어 송도국제도시에 진입하면 오른편 힐스테이트, 푸르지오하버뷰쪽이 M1블록이다. 이 아파트 뒤편에 M2, M3블록의 어민생활대책용지가 있다. M3블록 일부를 제외하면 미개발지로 남아 있다.
/김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