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 10시30분께 안성시의 한 건축현장에서 설비작업을 돕던 50대 인부 A씨가 5m 높이에서 추락했다. 땅바닥에 머리와 가슴을 심하게 부딪힌 A씨는 한 움큼씩 피를 토하는 등 의식불명인 채 안성의료원으로 옮겨졌고, 의료원측은 A씨가 얼굴이 풍선처럼 부어오르며 혼수상태에 이르자 곧바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사고가 난 지 1시간 만인 11시30분. 긴급 연락을 받은 외상팀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구급헬기를 불러 20분만에 안성 대덕저수지 부근 헬기착륙장에서 환자를 넘겨받았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이국종 교수가 출동부터 헬기에 동행, 이송되는 동안 내내 응급처치를 했다.
병원도착 즉시 수술실로 옮겨져 두개골 개두술을 받은 A씨는 극적으로 회복돼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곧바로 지원을 요청한 의료원의 신속한 판단, 구급헬기 투입과 이송 중 응급치료, 지체없는 수술 실시 등 '제대로 어우러진 3박자'가 사선을 넘나들던, 아니 숨질 가능성이 훨씬 컸던 한 생명을 구해낸 것이다.
# 사례2
주말인 지난 2월 18일 오전 8시4분. 파주의 한 산기슭에 위치한 공장에서 작업중이던 직원 B씨가 기계 틈에 다리가 끼는 응급사고가 발생했다.
아주대병원 외상팀에 연락이 온 건 사고발생 40분 뒤인 8시44분께. 즉시 구급헬기에 탑승해 현장으로 출발한 외상팀은 1시간 만인 9시50분께 현장에 도착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착륙지점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인근 군부대 운동장에 헬기를 내렸다. 그러나 사고 현장과 군부대까지 연결된 길은 구급차량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산길, 한시가 급했던 구급팀은 들것에 B씨를 실어 뛰기 시작했지만 외상팀은 10시5분이 넘어서야 B씨를 살필 수 있었다. 사고발생 후 2시간여 환자는 과다출혈로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사고 연락이 조금만 빨랐어도, 의료진이 조금만 더 빨리 환자를 살필 수 있었어도 B씨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었다.
외상환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A씨와 B씨의 운명을 가른 건 사고의 경중이 아니라 응급체계의 문제였다. 신체 손상(ISS)으로만 봤을 때 뇌출혈로 훨씬 심각했던 A씨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외상전문 의료진을 좀 더 빨리 만난 덕이었다.
┃관련기사 3면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취재진에게 "보통 아파트 몇 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숨지겠느냐"고 질문을 던진 뒤 "대부분의 사람들이 '3~4층, 아니면 운이 없을 경우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운이 없어서' 죽는다"고 말했다. 외상 상태보다 제대로 된 처치를 받지 못해 숨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그녀는 "실제로 수원의 한 아파트 8층에서 떨어진 여중생을 살린 적도 있다"며 "외상의 정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외상 전문의료진이 구급대와 함께 현장에 출동하는 시스템만 구축돼 있다면 대한민국 외상환자 중 최소 30%는 더 살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배·최해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