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 있었던, 살아야 할 외상환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고현장에서 외상환자를 살펴보면서 중증외상센터로 이송해야 하는지 여부를 가장 먼저 판단한 뒤 후속 응급조치를 하는 선진 외국과는 사뭇 다른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2010년 12월20일 자정무렵.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팀에 충북 제천의 한 병원 당직의사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30세 남성이 택시에 치여병원에 실려왔지만 비장이 파열된 것 같아 당장 수술을 할 수 없으니 아주대에서 응급수술이 가능하겠느냐는 사연이었다. 환자 상태가 심각해 1분 1초가 아깝다고 판단한 당직의사는 서울의 대형병원들 몇 곳에 수술가능 여부를 묻다 거절당해 아주대병원까지 전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상팀은 기꺼이 환자를 보내달라고 한 뒤 응급수술을 준비했다. 하지만 2시간여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해당 병원에 확인한 결과 환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에 오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보호자를 찾느라 아주대병원으로의 이송도 지체됐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환자가 나이도 젊은데다 비장 파열 정도의 신체손상이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게 외상팀 관계자들의 말이다. 단, 좀 더 빠른 이송수단과 외상외과 전문 의료진의 조치만 있었다면 말이다.

이 환자의 사망사례는 추후 구급헬기로 아주대병원 외상팀이 현장에 나가는 'Heli-EMS'이 구축되는 계기가 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외상외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응급구조대 메뉴얼에는 주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응급환자를 이송하도록 돼 있다. 민원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환자가 가까운 소규모 1차기관(병의원급) 응급실을 거쳐, 2차기관(종합병원급) 응급실에서 CT나 MRI 등 영상의학 검사를 받은 뒤 외상외과 전문의가 있는 3차기관(대학병원)까지 오기까지, 환자는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다 허비하기 일쑤다.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는 "선진 외국에선 외상환자를 외상센터로 보낼 지 응급실로 보낼 지를 먼저 판별하지만 중증외상센터가 없는 현행 응급구조시스템 안에서 이 메뉴얼은 무용지물"이라며 "미국의 경우 외상센터가 커버할 수 있는 지역 비율이 82.62%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0'%에 가까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준배·최해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