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의료체계 문제점
국내 상당수의 응급환자들이 1, 2차 소규모 의료기관을 거쳐 3차 전문 의료기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면 상관없겠지만 생사가 걸린 경우, 여기서 억울한 죽음이 나온다. 실제로 아주대학교병원 외상팀이 응급의료센터를 내원한 외상환자 276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사고 직후 곧바로 외상팀으로 옮겨진 사례는 전체의 43.8%인 121명 뿐이었다. 절반이 넘는 환자들이 외부 병원을 통한 뒤 외상전문 의료진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나마 외부병원에서 검진 후 바로 외상팀으로 올 경우는 전체의 37.7%인 104명이었지만 다른 병원에서 CT나 MRI 등 영상의학 검사 후 외상팀으로 옮겨져 오는 환자도 18.5%, 51명에 달했다. 이들을 각각 A, B, C그룹으로 분류했을 때 A그룹은 외상외과 전문의를 만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40분이었던 반면, B그룹은 2시간43분(163분)이었다. 외상팀은 이 정도까지도 그나마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C그룹은 외상전문의들을 만나는데 A그룹의 6배인 평균 4시간5분(245분)이 걸려, 환자 상태가 심각할 경우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게 외상팀의 설명이다. 그만큼 황금같은 생존 시간이 비전문 외상외과 의료진들에게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행 응급체계라는 지적이다.
■ 외상환자 중증도 분류지침
1976년 미국외과학회 외상분과위원회에서는 외상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위해 중증외상환자로 분류할 지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병원들은 외상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바꿔 말하면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미국의 딱 1976년 수준이란 것이다. 지침은 1986년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4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의 내용을 갖추게 됐다.
1단계는 혈압, 맥박, 호흡 등 활력 징후와 의식상태에 따라 외상센터로의 이송여부를 결정한다. 1단계의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다면 2단계에서 손상입은 부위를 기준으로 한 해부학적 평가로 머리, 목, 가슴, 배 등에 관통상이나 자상을 입은 경우, 혈관이 모여 있는 골반골이 골절된 경우 등에 외상센터로 환자를 이송한다. 이 또한 해당되지 않는다면 3단계에서 손상 과정에서 강한 충격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높은 곳에서 추락했거나 차량이 30㎝이상 찌그러진 사고를 당한 경우 등에 레벨 1 이하의 가까운 외상센터로 이송한다는 것.
이마저 해당되지 않으면 환자특성상 기존의 질환을 기준으로 한 4단계로 간다. 4단계에선 고령이거나 임산부, 특이 질환을 가진 경우 등에 의료진과 상담 후 가까운 외상센터로 갈 것을 권한다. 특히 지침은 네가지 단계 모두 해당되지 않더라도 의심이 가면 외상센터로 환자를 옮겨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중증외상센터 건립계획 어디까지 왔나?
이미 10년 전부터 외상센터 구축의 당위성을 주장해온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지난 10년간 외상센터 구축사업은 단 1㎜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정부와 정치권에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중증외상센터 건립계획은 지난해 1월 석해균 선장 치료 이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9년 '2010~2012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계획'을 발표, 6천억원을 들여 전국 6곳에 권역외상센터를 세우자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달 기획재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비용 대비 편익이 낮다'는 분석을 근거로 사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후 지난해 1월 석 선장 수술 후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가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중증외상센터 건립은 해결되는 것 같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유력 국회의원들과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나서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오는 2016년까지 2천억원을 투자, 16개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센터당 100억원대로 감소한 예산으론 사업을 진행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중증외상센터 건립사업에 재정지원을 명시한 법률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자동폐기되면서 결국 외상센터 건립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 걸음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일단 법률 개정안이 처리돼야 센터건립 사업 조기시행 등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다"며 "국회에서 하루빨리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장관도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배·최해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