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혁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지난 주 휴일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10여년 전에 만나 흉금을 터놓고 인생을 이야기하는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한라산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형이 여러 사람들의 오해로 진실이 가려지게 되어 직장에서의 처지가 곤란해져서 위로겸 사색겸 해서 다녀오고자 했다.

요즘 방송에서 나오는 '힐링캠프' 뭐 그런 것과 유사했다. 제주 해안을 걷고 오름을 오르고 그리고 한라산을 8시간 등반하며 삶이 그리 슬픈 것만은 아니며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가지고 제주공항을 떠났다.

그런데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또 다른 화가 솟구쳤다. 사실 화낼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는데…. 제주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표를 일찍 받고 배낭도 일찌감치 부쳤다. 한라산에서의 비상식량과 혹시 있을 악천후에 대비한 준비물들로 큰 배낭을 가지고 갔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고 일행 모두가 화물로 부쳤다.

그런데 우리 일행의 배낭은 김포공항의 하역장에서 가장 마지막 순간에 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골프채였다. 제주에 골프 여행을 많이 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큰 비행기여서 그런지 골프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그들의 골프채 역시 꽤 나왔다. 골프채가 나오고 과일 상자와 여러 짐들이 나오다가 마지막에 배낭이 나와 들고 나오는데 왠지 화가 났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부유층들을 위한 배려의 정책이 여기서도 진행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도 김포공항 하역장 관리자들은 하역 매뉴얼에 의해 고가품인 골프채를 가장 먼저 내보냈을 것이다. 노동을 하는 그들은 매뉴얼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그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또 골프채가 다른 짐에 비해서 크기가 큰 것이니 먼저 내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진자들에 대하여 우선하는 정책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수도 있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화물을 부친 순서대로 하역을 하면 서로간에 오해 없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이것이 공평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서민들이 빨리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배낭을 먼저 하역하였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어차피 골프채를 가지고 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었기에 우리 일행처럼 늦은 시간에 내려 광역 버스를 타야 할 사람들처럼 시간에 촉박성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을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사회가 늘 이런식이었다. 아파트를 기반으로 하는 신도시가 조성되면 가장 먼저 버스 노선이 생기는 곳은 대형평수의 아파트이다. 가장 늦게 버스 노선이 개통되는 곳이 소형 평수의 단지이거나 임대 아파트 단지이다. 대형 평수에 사는 사람들보다 소형 평수에 사는 사람들이 버스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가진 사람들 위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불편하고 힘든 것은 고민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수원 지동의 경우도 어두운 밤에 환한 빛을 줄 수 있는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다.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더 밝은 빛을 주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먹고 살기가 바빠서 시청이나 도청 등에 자신들이 얼마나 열악한 곳에 사는지, 그래서 도와달라고 하는 목소리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는 곳 대신에 깨끗하고 화려한 곳은 더 많은 지원을 통해 더 깨끗하고 화려해진다. 공원도 도서관도 대부분의 편익시설들이 부유층 지역부터 만들어진다.

불편하지만 이것은 진실이다. 우리는 이제 가진자들을 우선시하는 불편한 진실에서 벗어나야 하다. 작은 것에서부터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런 것이 참다운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