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동원 / 객원논설위원·인하대 교수
2007년 6월 애플이 아이폰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을 때, 당시 세계 1위 업체인 노키아의 칼라스부오 CEO는 비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정하는 것이 오직 시장의 표준이다." 당시 노키아의 자신감과 위세가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이다.

그랬던 노키아가 추락하고 있다. 휴대폰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업체들에게 이미 1위 자리를 내주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며칠 전에는 급기야 노키아의 신용등급이 투기직전등급으로 하락 조정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핀란드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세계 핸드폰시장의 1위를 고수해왔던 노키아의 추락은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교훈을 다시 실감시킨다.

노키아가 추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해석하면, 스티브 잡스가 창조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놓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 숨겨진 진정한 실패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뼛속 깊이 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똑같은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키아의 중요한 패인은 자신의 기존 성공방정식에 대한 자만에서 나온다. 많은 승자(勝者)들이 빠졌던 함정인 '성공 함정(competence trap)'에 걸린 것이다. 과거 자신이 성공했던 비결에 그대로 의존하다가 몰락하게 되는 함정이 바로 '성공 함정'이다. 자신의 성공 비결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지, 오늘 성공하고 있는 기업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노키아가 믿었던 최고의 성공공식은 그들의 수요창출 역량이었다. 노키아는 실제 핸드폰 패러다임 내에서는 시장수요를 만드는 천재였다. 첨단기기 단일 품목으로 지난 10년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물품은 놀랍게도 '노키아 1100' 모델이다. 일본 닌텐도 '위',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를 제치고 1위 매출액을 기록한 단일품목인 '노키아 1100'은 주로 인도와 같은 극빈국의 소비자들에게 팔렸지만 5년동안 무려 2억5천만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만들었다.

휴대폰을 모르던 저소득층에게 휴대폰의 가치를 일깨워서 시장을 창조했다는 놀라운 스토리가 담겨있다. 구체적으로, 인도 어부 및 농민들이 공동 소유할 수 있도록 번호 하나에 여러 명의 이름을 저장하는 기능을 넣었고, 통화요금의 상한설정, 내장라이트 부착 등 낙후지역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고안해서 엄청난 수요를 만들었던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2008년 인도 벵갈루루의 국제학회에서, 정작 인도에 대한 감동은 못 받았지만 오히려 '노키아 1100'의 시장 통찰력에 놀랐었을 정도였다. 노키아는 아마도 스마트폰에서도 이런 수요창출 능력을 믿고 빠른 추격을 자신했겠지만, 기술적 승부처에서 조금이라도 늦으면 수요창출능력도 가치가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노키아가 믿는 또 하나의 성공공식은 플랫폼 전략이었다. 플랫폼 전략이란 휴대폰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일부 부품과 디자인만 달리해서 다양한 제품을 내놓는 전략이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뛰어들면서도 우선 정확한 플랫폼을 구축하자고 시간을 보내면서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에서 독자적 운영체계(OS)인 '심비안 OS'를 고집했었는데, 이것이 기능 단순성 등의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되자, 뒤늦게 MS와 손잡고 '윈도폰 OS'를 채택했으나 이미 시장을 삼성 갤럭시 시리즈와 애플 아이폰이 양분한 상황에서 빈틈을 찾지 못했다. 이처럼 뒤늦게 대응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존 비결인 플랫폼 구축에 집착한 것이 추락의 큰 원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노키아의 추락 스토리가 공명(共鳴)이 큰 이유는 그들이 누리던 자리를 우리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노키아의 몰락은 우리에게 당장은 기쁜 소식이지만, 그들이 남긴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지 않은 한 축배를 들 수 없다. 노키아가 추락에서 당장 회복하는 것도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영원히 몰락하는 것도 혹시나 우리의 미래 모습이 될까 염려가 커진다. 노키아의 추락 스토리만큼 미묘한 맛을 남기는 사례도 당분간 없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