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부터 32년간 외항선을 탄 베테랑 바다 사나이, 1년 평균 지구를 두 바퀴나 도는 마도로스가 갑자기 해적을 무찌른 '영웅'으로 재탄생한 것은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 덕분(?)이다. 그는 오랜 세월 배를 탔지만, 해적을 만난 적이 없었으며 있어 보았자 겨우 좀도둑 수준의 우발범들을 만났을 뿐이다.
삼호주얼리호는 그가 회사를 옮기고 처음 타는 배였다. 솔벤트를 싣고 아랍에미리트를 출발하여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 소말리아 북쪽 아덴만에서 2011년 1월 15일 진짜 해적을 만난 것이다. 그날따라 안개가 자욱하여 바다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는 해적들의 감시를 뚫고 인근 청해부대와 연락을 취했고 기지를 발휘하여 항해를 지연시키면서 시간을 벌었다. 1월 21일 새벽 청해부대의 여명작전이 시작되어 해적들은 사살하거나 체포하고 선원들을 구출했다. 그러나 석 선장은 몸에 6발의 총상을 입었다.
이때부터 아주대 의료원 이국종 교수팀이 투입되어 외상을 치료하고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 280일, 9개월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석 선장은 이제 해군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군무원이 되어 '교관'으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석 선장은 당시에 그가 체험한 숨막히는 상황을 청중에게 80분간 들려주었다. 필자는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진정한 '캡틴정신'을 읽었다. 이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리더십의 요체였다. 그의 이야기에서 필자가 뽑은 캡틴정신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 "위기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1월 15일 아침 7시 평상시처럼 선교를 체크하던 석 선장은 안개를 틈타, 짐을 잔뜩 실어 갑판이 낮아진 삼호주얼리호를 올라타고 있는 해적들을 발견한다. 석 선장은 침착하게 비상벨과 안전벨을 울리고 선원들을 대피시킨다. 선원들은 불안에 떨었다. 석 선장도 처음 당한 일이라 불안했다. 그러나, 선장이 불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 선원들을 최대한 안심시켰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자신부터 희망으로 무장했다.
둘째, "최악의 상황에서도 방법을 찾아라." 해적들이 배를 소말리아로 몰고 가라고 했을 때, 선장이 할 일은 항해를 늦추고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해적들이 엔진동작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알고, 엔진에 고장을 유도했고, 나침반을 조작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도 했다. 배에 불을 질러 모두 같이 죽자고도 했고, 엔진냉각수로 쓸 수 없도록 심지어는 식수까지 버리자고 했다. 2일이면 갈 거리를 6일이나 끌었다.
셋째, "외부의 힘을 빌려라." 석 선장은 해적이 승선한 후 초기에 이메일을 이용하여 인근 청해부대에 상황 보고를 했다. 청해부대에서는 최대한 시간을 끌라는 연락이 왔다. 석 선장은 배의 운항을 지연시키면서 모스부호든 뭐든 이용하여 외부와의 연락을 유지하려 했다.
넷째, "부하를 위해 몸을 던져라." 1월 21일 청해부대의 여명작전이 시작되었다. 양철지붕 위에 소나기 방울을 퍼붓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면서 청해부대의 헬기에서 포탄이 날아들었다. 해적들은 선원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해적들도 최후의 발악을 했다. 석 선장에게 6발의 AK소총을 날렸다. 팔과 다리에 한 발씩, 그리고 배에 4발을 맞았다. 21명(한국인은 8명)의 선원 중 총을 맞은 사람은 석 선장 혼자였다. 그는 부하들의 총알받이가 된 것이다.
다섯째, "적에게 굴하지 마라." 해적에게 공격을 당한 선박은 많았다. 그렇지만 삼호주얼리호처럼 해적과 맞대응한 배는 없었다. 선원 중에서도 "선장님, 위험합니다. 해적들의 요구에 순응하십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석 선장은 생각했다. "해적들이 요구하는 금액을 주고 우리가 풀려나면 우리 몸은 편할 수 있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적에게 죽을지언정, 굴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