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의 초록 잔치가 절정에 이르렀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초록 물결이 일렁인다. 그 잔치 행렬에 알록달록 손에 손을 잡은 가족 나들이 행렬이 이어진다. 가족이라야 달랑 두 식구인 우리 가족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지나는 사람 구경과 모여앉은 가족 무리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가끔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봄나들이는 김밥과 맛난 음식을 싸들고 나와 봄꽃 향기를 가득 실은 간지러운 봄바람을 쏘이면서 지천인 꽃과 새로 갈아입은 초록잎 구경도 하고, 가족간 바빠서 나누지 못했던 일상생활의 나눔과 공유, 그리고 이해에 더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나눌 추억을 만드는 자리이다. 물론 나서는 순간 나들이길 기대는 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공통 욕구는 소통하고 상호 사랑하는 가족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는 오가는 길의 그 다정했던 모습들과는 달리 모여앉은 가족들의 시선이 제각각임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아이들은 게임 삼매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너무 많은 가족들이 이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선 고정을 넘어 두 귀에 이어폰을 끼고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각자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식사시간에는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니 준비한 음식을 펴 놓고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도 모든 가족의 시선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머물고 거의 대화없이 점심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4시간여를 머무는 동안 가족이 나눈 이야기는 필요한 물건을 달라는 요구 소리와 더 먹겠느냐는 의사를 묻는 말, 어떻게 하라는 지시, 그만 가자고 털고 일어나는 소리 정도였다.
이런 수준의 나눔은 대화라기 보다는 말을 나누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물론 다른 옆자리 가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간 대화 부재는 통계가 증명해 준다. 얼마 전 직장인 남녀를 대상으로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에 가족간 대화 시간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0%가 1시간 미만이라고 답변을 했다. 그 중에는 30분 미만인 경우도 39.3%나 되었다. 그 대화의 질도 봄나들이 길에 만난 그 가족처럼 대화가 아니라 말에 해당한다면 최소한 40%의 가족은 대화없이 사는 것이다.
최근 '함께 있는 외로움(Alone Together)'이라는 책을 펴낸 MIT공대의 셔리 터클 교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잘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단순히 연결만 될뿐 대화를 희생하고 있고, 기술에 의존하면서 사람간의 관계가 줄어들고 있다며, 아이들이 실제로는 상대방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는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기술이 식탁을 점령하여 유일한 대화 광장인 식사 시간마저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집안의 부엌이나 식탁을 기계의 해방구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 시간을 이용해 대화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알려주자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늘어나는 청소년 문제, 가정 폭력, 이혼, 가족 구성원간 갈등의 근저에 가족원간 대화 부재가 깔려 있다. 말을 할 줄 알지만 대화를 할 줄 모르는 가족이 많다. 대화하는 기술 습득이 이루어져야 하고,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선 가족간 대화 회복을 위해 작은 약속부터 시작해 보자. 가족간 부엌과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추방하자'는 결정부터 대화로 합의를 해보자. 밥을 먹으며 눈을 맞추고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가족 관계가 눈에 띄게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