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가계 부채에 눈길이 간다. 부채 총액이 2008년 724조원에서 2011년 913조원으로 불과 3년만에 무려 200조원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자영업자 가계 부채까지 합치면 1천조원을 돌파한지 오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점진적으로 가계 부채를 줄였으나 한국은 반대로 덩치를 키웠다. 덕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중은 81%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상환 능력의 바로미터인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지난해말 157%로 4년전 비우량 주택채권파동 직전 미국의 137.8%를 능가한 상황이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저금리 기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장기간의 내수 부진과 고물가에 따른 민생경제 위축은 또다른 복병이었다. 빚을 내어 생활하는 서민들이 확대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2010년부터 소득 5분위 중 저소득층에 속하는 1분위 가계부의 적자폭이 점증한 결과 지난해 4분기에는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1분위 가계의 56.6%가 적자상태다. 다급해진 정부는 가계 부채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부터 은행권과 저축은행·상호금융은 물론 사금융에 대해서도 가계신용관리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지난 4월 18일에는 신용카드 발급 조건도 한층 까다롭게 했다.

서민들의 사채의존도 제고는 불문가지였다. 2008년 9월 130만여명이 대부업체에서 5조6천억원을 대출받았으나 2011년 6월에는 247만명이 8조6천억원을 빌린 것이다. 서민경제는 갈수록 쪼그라드는데 은행 문턱을 더욱 높였으니 말이다. 생활자금, 학자금, 기존 대출 상환용 등 소액 여신이 두드러진 것이 시사하는 바 크다. 고령층의 가계 부채 점증에도 눈길이 간다. 대부업체들의 연체율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가계 부채의 질이 빠르게 나빠진 것이다.

지난 3월 30일 정부는 미소금융과 햇살론을 통해 3조원 가량의 생계형 구제자금을 추가 공급하고 대출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서민금융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대기업과 시중은행, 그리고 농협, 수협, 신협 및 저축은행 등에 마이크로 파이낸싱을 확대할 것을 강요했으나 현실은 실망스럽다. 대기업들은 변죽만 울리고 2010년 7월부터 개시한 햇살론의 대출 실적은 갈수록 축소되어 금년 지원 실적은 반토막으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보증비율 85%로 부실 발생시 금융업체가 떠안는 손실은 15%임에도 연체우려때문에 대출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정부의 우격다짐에 마지못해 시늉만 하는 실정인데 무작정 대출재원을 늘린들 무슨 소용인가.

시중은행들의 엇박자는 점입가경이다. 전국 16개 시중은행의 작년도 이익금은 16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음에도 새희망홀씨 대출 목표액은 1조4천480억원으로 목표치보다 오히려 500억원 이상 축소했으니 말이다. 은행측은 이구동성으로 연체율 관리애로를 이유로 들었으나 금감원은 "작년말 새희망홀씨의 연체율은 1.7%수준에 불과하다"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금융당국의 은행권 윽박지르기가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도"라며 자랑하던 미소금융은 조기 레임덕으로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엉거주춤한 부동산 대책과 저금리, 가계신용관리 강화 등 세련되지 못한 대책들이 가계 부채 문제를 악화시킨 것이다. 명백한 정책 실패였다. 일자리 확대를 통해 서민들의 실질소득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나 현재로선 희망사항일 뿐이다. 국내 사금융 규모가 수십조원인데 반해 미소금융기금은 수조원대에 불과, 언 발에 오줌누기다. 지난달 30일 시중은행들이 저소득 가계 부채 관리에 대한 공적 역할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나 정권교대기여서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정부는 마지막 남은 강남 3구 투기지역 해제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나 서민금융문제 완화에는 별무효과일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5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유럽 재정위기 수습 지연, 잦아들지 않는 고유가 행진, 안갯속의 남북관계, 집값 속락 우려 등은 또다른 변수이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만전 발표가 허언(虛言)이 아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