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구례에서 하동까지 지리산 자락을 감돌며 흐르는 강이다. '화개장터'라는 노래에도 있듯이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풍물과 전설을 실어나르는 남도의 젖줄이다. 풍광이 수려해, 시인 묵객들이 모여 들었던 바, 김용택, 정공채, 이시영, 곽재구 등의 시인들이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박경리의 '토지'와 이병주의 '지리산'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판소리의 동편제, 서편제 가락도 섬진강을 경계로 나눠진다.

내가 처음 섬진강을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방학 때 곡성이 고향인 친구집을 방문하여 첫 만남을 가졌는데, 그때 감회란 실로 잔잔한 충격이었다. 푸른 강물과 대조를 이루는 하얀 모래밭, 그리고 병풍처럼 초록으로 뒤덮인 대나무숲, 실로 색채 심상의 진수를 이루는 한폭의 풍경화였다. 붓과 물감만 있으면 있는 그대로 그려도 훌륭한 수채화 한 폭이 태어날 듯한 느낌이었다. 섬진강의 시인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섬진강 시편들은 아마 물감 대신에 언어로 그려놓은 그림시일 것이다. 넓고 깊지도 않은 채, 넉넉한 모습으로 잔잔히 흘러가는 물결은 아름다운 영혼의 너울거림인 듯했다. 아, 한국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이 있었던가. 그 후 섬진강은 내 마음의 고향이 되어 버렸다.

고향은 자기가 태어나 자란 육신적 고향이 있고, 자기가 추구하고, 존재가치를 구현하는 정신적 고향이 있다. 플라톤에게 정신적 고향은 철학일 것이고, 베토벤의 고향은 음악일 것이다. 비록 섬진강이 내가 태어나서 자란 육신적 고향은 아니지만, 늘 그립고, 가고 싶은 내 마음의 순례지이다. 종교인들은 성지순례를 통해 신심을 키우며, 예술가들은 주점순례를 행하며 예술혼을 다듬었고, 학자들은 서점순례를 통해 학구애를 북돋웠다.

나의 섬진강 순례도 그런 목적이 있다. 혼을 맑게 씻어내는 섬진강 정혼식(淨魂式)을 위해서다. 섬진강에 몸을 담그면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삶의 에너지와 활력을 얻는다. 말하자면 섬진강 정혼식은 내게 있어 일종의 통과의례요, 충전의식이다. 이쯤 되면 섬진강 순례는 내게 있어 성지 순례인 셈이다.

조선 인조 때 문장가인 신흠은 문을 닫아 걸고 책을 읽으며, 문을 열어 반가운 친구를 맞고, 문을 나서 아름다운 경치를 찾는 것을 인간의 세 가지 낙(樂)이라 하였다. 아마도 내가 자주 섬진강을 찾아 나서는 일도 그 낙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우울하고, 힘들 때 섬진강을 찾으면 위로와 안락을 얻는다. 또한 섬진강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나를 발견하는 최선의 길은 여행과 병이라 하였다.

병이 나서 오랜 동안 병석에 누워 있으면,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몸이 아프면 어린애가 되거나 철학자가 된다 하였는데, 아이처럼 보호를 받고 싶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생각에 잠기기 위해 일부러 아플 수는 없다. 결국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 머물면서 나 자신을 냉정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김영철 / 건국대 국문과 교수
그래서 보스칼리아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에서 여행을 외적 여행과 내적 여행으로 나누고, 자기를 발견하는 여행은 구경거리 위주의 외적 여행이 아니라, 마음 속의 여행인 내적 여행이라 하였다. 여행의 진정한 매력과 의미는 바로 이 내적 여행에 있는 것이다. 나의 섬진강 순례는 말하자면 내적 여행에 해당되는 셈이다.

인간도 일종의 반추 동물이다. 소들이 먹이를 조용히 되새김질 하듯이, 우리 인간도 지난 세월의 추억과 기억들을 반추하며 살아간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연어를 닮았다. 연어는 치어 시절 성장했던 고향에, 성체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회귀성 어족이다. 물론 번식을 위한 본능의 몸짓이지만, 분명 연어의 회귀는 인간의 습성을 닮았다.

귀소 본능, 바로 그것이다.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지상정인 것이다. 동물들은 싸움을 벌이거나, 먹이를 차지하거나 하는 일 외에는 혼자 있을 때 결코 뒤로 걷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뒷걸음질을 종종 친다. 인간만이 뒷걸음질 한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추억의 동물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아름다운 추억에 젖으며, 현재의 아픔을 위로 받고, 미래를 설계할 에너지를 얻는다. 나의 섬진강 순례는 내 삶의 추억 여행이기도 하다.

지금쯤 섬진강은 은어들이 새끼를 치고, 강변에는 밤꽃들로 뒤덮였을 것이다. 강 건너 밭두렁엔 누런 보리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릴 것이다. 내게 마음의 고향인 섬진강이 있다는 것은 내 생의 커다란 축복이다. 섬진강이 은어를 키우듯, 섬진강은 여리고, 혼탁한 내 영혼을 키워주고, 씻어주는 것이다. 독일의 어느 시구처럼 '청천하늘은 별을 가졌고, 푸른 바다는 진주를 가졌으며, 나의 가슴엔 섬진강이 있는' 것이다. 섬진강에 가도 늘 섬진강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