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렬 / 가천대 CEO아카데미 원장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라는 느낌이다. "낡은 질서가 소멸하고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난다"고 기 소르망은 주장했지만 우리 사회의 변혁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이다.

주자학을 신봉하던 조선조 봉건사회에서 근대국가, 또 현대국가로 숨가쁘게 변신한 한국은 가족관계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모계사회 등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과거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분명한 윤리관이나 가족관이 자리잡지 못해 숱한 갈등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최근 늘어나는 여성의 사회 진출, 자녀 양육이 외가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신 모계사회'라는 말이 유행하고 전통적 개념의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 2010년 전국 중고교생 7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어머니 형제인 이모와 외삼촌을 아버지 형제인 고모와 백부·숙부보다 친밀하게 느끼고, 이모부가 고모부보다, 외숙모도 백모·숙모보다 더 가깝게 느낀다고 답해 친가보다 외가가 친밀하며, 심지어 '애완견도 가족'이라는 답변이 많았다고 전한다.

특히 저임금과 실직, 이혼 등으로 가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남성이 늘어나면서 여성은 육아와 가사 외에 경제적 의무도 짊어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신 모계사회'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남편이 천덕꾸러기가 된 자조적 농담도 유행한다. '집에서 한끼도 안 먹는 남편은 영식씨, 한끼 먹는 남편은 일식씨, 두끼 먹는 남편은 두식이지만 세끼 먹는 남편은 삼시쉐끼, 세끼 먹고 간식까지 달라는 남편은 간나쉐끼, 세끼 먹고 간식 먹고 마누라는 쳐다보지도 않는 남편은 쌍노무쉐끼' 란다.

늙어 힘없고 수입이 줄어든 남편은 '구두 밑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칙칙한 낙엽' 신세로 가장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는 속담도 옛말이어서 1990년 1만8천명이던 처가살이 남성이 20년 지난 2010년 5만3천명으로 늘어난 반면, 시집살이를 하는 여성은 44만명에서 19만명으로 절반 넘게 준 통계청 인구주택조사결과는 남성의 처가살이 부활을 보여준다. 가정의 중심이 '바람처럼 왔다 사라지는' 남성 대신 여성이 되는 모계사회가 21세기 신인류를 통해 재현되고 있다는 증좌다.

이렇게 사회가 급변할수록 인간사의 덕목을 돌아보게 한다. 유교 도덕의 기본 덕목인 세가지 강령(綱領)인 삼강(三綱)과 사람이 항상 행해야 할 다섯가지 실천 덕목인 오륜(五倫)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하다. 강령이란 일의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며, 강(綱)이란 그물의 벼리줄(그물의 맨 위에 있는 굵은 줄로 이 줄만 관리하면 복잡한 그물의 밑 부분도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을 말한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즉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고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 오륜은 군신유의(君臣有義 : 임금과 신하는 의가 있어야 하고), 부자유친(父子有親 : 아버지와 아들은 친함이 있어야 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 :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 :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이다. 원래 중국 전한(前漢) 때의 거유(巨儒) 동중서(董仲舒)가 공맹(孔孟)의 교리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三綱五常說)을 논한 데서 유래되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윤리도덕으로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다. 봉건시대의 '통치와 도덕 윤리'인 삼강오륜이 지배층과 남성들 위주여서 선비 이외 직업에 종사하는 일반 상민과 여성들에게는 불리하였다. 이제 삼강오륜은 박제(剝製)된 교과서가 됐지만 도덕을 기본으로 한 인간의 원형질이 변하지 않는 한 현재도 살아 숨쉴 것이다. 옛것에 토대(土臺)를 둬 정밀하게 배워 본받으며, 그것을 변화시켜 새 것을 창조하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본다면 '삼강오륜의 근본정신은 잃지 않으면서 새 시대에 맞는 덕목으로 오늘날에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면 훌륭한 '실용적 인간학'으로 활용할만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