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80㎞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 두명의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가 걸었던 전도와 순례의 길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듯 산티아고를 찾는 것은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예수의 복음과 사랑이 그곳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궁핍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우리의 가난한 정신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왜 그 머나먼 스페인으로 날아가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이 땅에는 우리의 남루한 삶을 위로해 줄 가르침과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길은 진정 없는가?
그러한 때에 떠오른 거인이 있었으니 원효이다. 한국 불교사의 신새벽을 연 서라벌의 원효, 야고보처럼 진리의 여정에 온 몸을 던진 그 이는 젊은날 나를 사로잡은 인물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원효, 하지만 그 진면목은 감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원효. 시정(市井)에서 무지몽매한 민중에게 불심을 적시고, 저자거리에서 백성들과 걸림없이 부대끼며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던 한국 불교의 영원한 스승이신 원효. 원효는 당나라로 유학 가기 위해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지금의 수원, 화성, 평택에 이르는 697㎞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스스로 파계하여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자칭하며 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고, 전국 방방곡곡을 자신의 두 발로 걸으며 그들과 함께 하는 생을 살았다.
오랜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르침과 정신은 그가 창건한 절, 그가 만났던 사람들, 그가 걷고 앉았던 산길 위에 사라지지 않고 전설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원효가 평생을 두고 걸었던 697㎞의 순례길은 야고보가 걸었던 길 못지않은 웅장한 스케일 안에 수많은 이야기와 가르침을 담고 있으니 스토리 텔링이다.
원효가 태어난 경산시에서 시작된 원효의 길은 경주를 거쳐서, 원효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곳곳에 산재한 산하를 휘젓는다. 대구를 넘어 낙동강이 흐르는 안동 하회 마을을 지나고 문경의 하늘재 길과 남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여주 신륵사를 지나면, 어느새 그가 깨달음을 얻은 평택과 화성에 이른다. 이것은 약 880㎞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뒤지지 않는 대장정의 길이다. 이 길 위로 원효의 행적을 큰 기둥으로 삼아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 등을 엮어 오랫동안 우리가 잊었던 원효의 순례길을 구체화하면 어떨까?
이제 1천300년 전 원효가 걸었던 길을 걸어보자. 그가 일생동안 설파한 깨우침이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우리 곁에 늘 있어온 산과 강과 하늘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는지를 두 발로 걸으며 원효의 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