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에 얼마나 대화가 없었으면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요? 한 연구에 의하면 살인사건의 34%가 사소한 대화중에 발생하며, 남녀 사이의 불협화음과 충돌의 90%가 소통의 부재 때문에 발생합니다. 어디 소통의 절박함이 가족에게만 국한되겠습니까? 총선이 끝나고 국회 개원을 해야 하는데도 아직도 개원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다투고 있는 국회 역시 소통의 부재가 원인입니다. 대선주자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저마다 곱게 포장된 아름다운 청사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자신만이 대통령감이며, 그렇기 때문에 경선 규칙을 새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도 야도 경선룰을 합의하는 데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입니다. '나만이 대통령감이다'라는 교만이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늙은 인디언 추장이 후계자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세 명의 젊은이들에게 로키산맥의 정상에서 본 것을 가져오면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모두 돌아왔습니다.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저는 로키산맥 정상에서만 피는 꽃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정상에만 있는 붉은 빛이 나는 돌조각을 찾아 가져왔습니다." 세 번째 청년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수군거렸습니다. 비난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정상에서 봤습니다. 저 산 너머에 비옥한 땅과 넓은 강물, 수많은 버펄로 떼를 보았습니다. 저는 누가 추장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누가 되든지 우리는 저 산을 넘어야만 합니다. 우리 부족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현명한 추장은 누구를 후계자로 삼았을까요? 청년들의 무엇을 보려고 추장은 정상에서 본 것을 가져오라고 했을까요? 바로 큰 꿈입니다. 그들의 꿈이 자신만의 영광을 위해서인지, 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랬을 겁니다.
사실 큰 흐름을 읽고 보는 사람은 자신을 작은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면 다른 사람들이 높여줍니다. 이것이 겸손의 선물입니다. 마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로 모든 물이 모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하며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들, 자신만이 국민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며 주장하는 대선주자들이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되어 있는 민생법안들이 6천여 개나 됩니다. 그런데도 개원조차 못하고 있고, '국민을 위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전혀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노르만 쉬바르츠코프 장군의 말이 귀에 와 닿습니다. "위대한 지휘관은 부하들을 전체로 보지 않고, 개별적으로 본다." 대부분의 지휘관은 소대 앞에서 부하들을 전체로 바라보지만, 위대한 지휘관은 그들을 개별적으로 편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소통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의 탐욕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국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국민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구체적'이어서 아무나 못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에 대한 사랑의 추상성과 구체성이 균형을 이룬 사람입니다. 국민 모두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사랑의 추상성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랑인 민생법안의 심의입니다. 먼저 국회부터 개원시키고 민생법안 심의에 몰두하는 큰 정치인이 되기를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