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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찬 / 수원시 한의사회 회장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화되었다더니, 겨우내 기다렸던 봄은 부지불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일찍 시작된 무더위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름철은 땀을 많이 흘리고 밤이 짧아 깊은 잠을 자기도 어려워 건강을 해치기 쉬운 계절이다. 세계 여러 민족 중 총명하기로 으뜸인 우리 민족의 오천년 역사를 통해 결집된 여름 건강을 위한 지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세계 각국의 전통의학 중 학문적 체계와 수준이 최고인 한의학에서는 여름철에 발병하는 병을 '서병(暑病)'이라 하여 다른 계절의 병과 달리 진단하고 치료해 왔다. 여름철 무더위 속에서 힘든 일을 하다가 더위를 먹는 '중서(中暑-일사병)', 날씨가 덥다고 자꾸만 차가운 음료와 음식을 즐겨먹다가 배탈이 나는 '모서(冒暑)', 땀을 흘린 후 갑자기 찬바람을 쏘이거나 큰 일교차에 의해 걸리는 여름감기인 '상서(傷暑)', 그리고 요즈음의 냉방병에 해당하는 '주하병(注夏病)' 등 여름철 건강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질병을 원인에 따라 구분하여 치료하는데 청서익기탕·이향산·익원산·육화탕 등을 병인에 맞게 잘 처방하면 그 효과가 매우 탁월하다.

이러한 '서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더운 여름일수록 차가운 음식보다는 삼계탕·보양탕·추어탕·장어탕 등 속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을 자주 먹는 지혜로운 전통을 갖고 있다. 사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면 그 열이 발산하는 과정에서 몸속의 내부 장기는 오히려 차가워지기 쉽다는 사실을 통찰한 지혜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본디 나약한 속성을 갖고 있는지라, 여름일수록 따뜻한 음식이 좋다함을 알고 있어도, 땀 흘린 뒤의 시원하고 차가운 음료의 유혹을 이기기 어려움은 자명한 터, 이때를 대비한 건강음료 '제호탕(醍호湯)'까지 '동의보감'에 등재시킨 허준 선생의 배려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제호탕은 궁중에서 가장 즐겨 마신 여름철 건강음료로서, 매년 단오(음력 5월5일)에 어의들이 모인 내의원(內醫院)에서 정성껏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면, 임금은 '기로소(耆老所)'에 모인 원로대신들에게 '단오선(端午扇)'이라 하는 부채와 함께 하사해서, 더운 여름에 대비하게 한 왕실건강음료이다. 제호탕의 주된 약재는 오매(烏梅-매실)이고, 여기에 초과(草果)·사인(砂仁)·백단향(白檀香)·꿀 등의 약재를 가미하여, 해서열지번갈(解暑熱止煩渴-더위로 인한 열을 식혀주고 가슴 답답함과 갈증을 그치게 해줌)의 효능을 갖고 있어 맛과 건강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원래 단오는 설·한식·추석 등과 함께 조선시대 4대 명절 중의 하나로 국조보감(國朝寶鑑)에 보면 한의학에 밝아 유의(儒醫)로 분류되는 정조대왕 역시 신하들에게 제호탕과 환약을 하사하며 "수고한 것을 생각해 특별히 제호탕을 내려 더위를 씻게 하려는 것이니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으라"고 하자 대신들이 감격하며 받는 장면이 보인다.

올해는 단오가 돌아오는 일요일인 6월24일이다. 아이스크림·탄산음료·아이스커피 등 건강에도 해롭고, 갈증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않는 기호식품에 의존하기보다는,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아름다운 전통에 기반한 제호탕·매실차·오미자화채 등의 전통건강음료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달해도 선조들의 지혜와 가르침이 목말라지는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