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 논설위원
멘붕이라는 신조어가 대유행이다. '멘탈(정신)과 붕괴'의 합성어로 '멘탈이 붕괴됐다'라는 뜻이다. 정신건강이 훼손됐다는 의미다. 멘붕은 인터넷용어로 시작했다. 게임아이템이 갑자기 사라졌다든지, 키보드배틀에서 졌을때 받는 충격을 멘붕이라고 표현한 것이 대중화된 것이다. 이제 실생활에서 당혹스럽거나 창피한 일을 당했을 때 또 그런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나 행동을 하면 멘탈이 붕괴되었다라고 표현한다. 당황스럽거나 격한 분노가 끓어올라 사람의 상태나 감정이 평소같지 않게 맛이 갔다면 그게 바로 멘붕인 것이다.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상임고문은 방송출연에서 4·11 총선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패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며 '멘붕'이란 신조어를 구사해 눈길을 끌었다. 손 고문은 라디오에 출연해 "멘붕이란 유행어를 아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멘탈 붕괴? 그 정도야 안다. 다 이긴 총선에서 졌을 때, 이런 걸 멘붕이라고 하나 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도 멘붕상태를 겪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5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롯데 자이언츠 황재균은 자신의 모자에 '멘붕 탈출'이라는 문구를 적어넣어 눈길을 끌었다. 운동선수에게 멘탈은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지금 대한민국은 멘붕의 시대다. 멘탈이 거의 정상치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대선출마를 확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만 하고 있는 안철수도, 아무리 해도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아 경선룰을 바꾸지 않으면 출마를 포기하겠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이재오 의원 역시 멘붕의 초기증세거나 이미 멘붕상태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험한 흥행보다 40%의 지지율을 방패 삼아 묵묵부답으로 버티고 있는 박근혜도 대선이 가까워 오고 예기치 못한 지지율 변화가 온다면 분명 멘붕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MB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내곡동 사저 매입논란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심지어 국정조사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그 역시 현재 멘탈이 정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제 80이 훨씬 넘은 실향민 1세대들은 종북파 논란에 휩싸인 의원들의 국회 입성을 보고 심각한 멘붕상태를 겪고 있는 중이다. 김정일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그들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의 행동에 심각한 정신붕괴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불법 경선논란과 당권과 비당권파로 나눠져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는 통합진보당의 멘붕은 상당히 진행된 사태고 강원도에서 단 한 석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한 민주당의 수뇌부들이 강원도 고성에 몰려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라'며 벌인 촉구 결의대회 역시 멘붕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정치인들은 그렇다 치고 104년 만에 겪는 가뭄으로 지금 농민들은 슬픈 멘붕상태를 겪고 있다. 타들어가다 못해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보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저 농부들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조차 멘탈이 붕괴되는 느낌이다. 가계부채에 허덕이다 못해 고리사채업자를 찾아가야 하는 중산층의 멘탈도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침체로 입주도 하기 전에 하우스 푸어(house poor)로 전락한 계약자들은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매일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그들의 멘탈은 이미 붕괴돼 버렸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으로 인한 멘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조어는 우리 세태를 가장 정확하게 진단하는 바로미터다. 멘붕이 2012년 최고의 신조어로 자리매김한 것은 전 국민의 멘탈 붕괴가 예사롭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삼일절(31세까지 취직못하면 취직길이 막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해야 함) 등의 신조어 역시 이 시대의 청년들의 멘탈 상태가 어떤지 가늠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멘탈 상태는 어떤가. 잘 모르겠다. 일부는 이미 무너졌고 일부는 복구 중이며 일부는 이제 막 초입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신의 멘탈은 건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