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대희 / 가천대 석좌교수
다이아몬드거리라 불리는 미국 뉴욕의 47번가에는 2천600여개의 보석상이 있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거래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 유대인인 이곳 전문보석상은 보석의 양과 품질, 사고 발생 시 보상 문제에 대한 어떠한 계약서나 각서도 주고받지 않고 거래를 한다. 이들 사회의 축적된 상호신뢰와 관행위반 시 제명되는 엄격한 규범의 네트워크가 사회적 자본이 되어 '악수계약'을 가능케 한 것이다.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남'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상호이익을 위한 협력과 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사회적 특성' 즉 사람들이 서로 믿고 협동심을 발휘하게 만드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동일한 양과 질의 노동과 자본 등을 생산요소에 투입하고서도 다른 성과가 나오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국가에 있어서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 여부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수석 연구원인 '스티븐 낵'은 세계 40여개국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 사회적 자본이 높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일한 조건하에서 국가 신뢰지수가 10% 높아지면 경제 성장률이 0.8% 상승한다는 결론도 이끌어냈다.

1960~2008년 기간 중 한국경제의 실질GDP 규모는 31배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중 세계GDP 규모가 6배 증가한 것과 비교한다면 실로 엄청난 압축 성장을 한 것이다. 경제성장 요인은 크게 노동투입, 자본투입, 생산성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는 1990년대 초까지는 노동과 자본 등 요소투입에 의한 경제성장으로 나타난다. 즉 인적자본 물적자본에 의존한 성장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앞으로는 노동투입에 의한 성장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의 한계효율도 저하되고 있어서 추가 자본투입에 의한 성장도 과거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다.

신뢰(Trust)의 저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선진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인적·물적 자본만으로는 부족하며 충분한 사회적 자본이 확보돼야만 한다는 주장이 한국경제에도 적용이 되겠다. '제3의 자본'으로서의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 선진경제를 향한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미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유력 대선후보 진영에서는 유권자에게 제시할 정책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은 대선의 최대 정책이슈로서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들고 있으나 이에 못지않게 우리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 확충'도 주요한 정책이슈중 하나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느냐 하는 중요한 향후 5년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사회적 자본 확충'이라는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여 평가를 받아야 한다.

유럽 금융위기 한가운데서도 성장과 복지 간의 선순환을 이루며 나가는 북유럽 국가(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들 국가가 잘 나가는데는 건실한 재정, 일하는 복지, 성장동력 투자 등을 꼽을 수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들이 오랜 기간 축적한 강한 사회적 자본을 들고 있다. 핀란드의 사회협약, 스웨덴의 고용안정을 위한 산업협약 등이 대표적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많이 언급되는 '스웨덴 모델'에서 복지만 논의가 되고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핵심제도인 '옴부즈만 제도'라는 무형 자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침착한 행동과 양보 배려의 모습을 보고 세계적 권위의 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는 일본의 사회적 자본의 깊이와 일본의 저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과연 어떤 평가가 한국인에게 주어질까 궁금하다. 선진국으로 향하는 우리의 선결과제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