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8월4일 소래 협궤열차 내부.

협궤열차는 레일 폭이 일반 선로의 절반인 7.62m의 좁은 궤도를 달리는 작은 열차다.

일제는 경기 내륙지역의 미곡을 운반하기 위해 수원과 여주를 잇는 수여선을, 인천의 염전과 소금을 수송하기 위해 인천과 수원을 잇는 수인선을 놓았다. 1937년에 만들어진 협궤열차의 대명사 수인선은 서민열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동철도주식회사 소유의 사설철도이며 철과 소금·곡물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수탈의 노선이었다.

수여선과 인천항을 연결하기 위해 태어난 철도였던 것이다. 수인선은 총연장 52㎞의 단선 협궤열차로 개통 당시 수원·고색·오목·어천·야목·빈정·일리·성두·원곡·신길·군자·소래·논현·남동·문학·송도·인천항 등 17개 역을 100분만에 주파했다. 수인선은 1942년까지 준수한 영업 실적을 올리자 일각에서 레일 광궤화 등 노선 개량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 해방기의 혼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점차 쇠퇴했으며 수인산업도로가 생긴 1970년대 후반부터는 화물 운송은 없어지고 여객 노선으로서의 기능을 주로 했다.

경제성도 없고 시설도 낙후됐지만 수인선에 온기를 불어넣은 것은 기차를 이용한 서민들이었다.

▲ 1970년대 초, 협궤열차 안에서 아이를 딸에게 내려주는 어머니의 모습. 지난 시절의 애환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격동한세기 인천이야기'(다인아트)에서 발췌.

작고 힘이 달려 안산 원곡고개 등지에선 손님들이 내려서 걷거나 열차를 밀어야 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다. 열차 시각에 맞춰 출발하는 기차를 불호령을 내리며 멈춰 세우고는 느긋한 양반 걸음으로 걸어와 기차에 오르던 할아버지, 1990년 10월 야목 건널목에선 협궤열차가 소형버스와 충돌했는데, 버스 대신 열차가 넘어져버린 코미디같은 일들도 종종 일어났다. 또한 개구쟁이 소년들의 기억속에는 기차가 지나기 전 선로 위에 대못을 올려놓고는 기관차와 기차 바퀴에 납작하게 눌러 만들던 대못칼도 남아 있다.

이처럼 수인선은 삶에 한줄기 웃음을 안겨주는 에피소드로 가득한 휴먼열차였다.

조성면(문학평론가·인하대 BK21 동아시아 한국학 사업단) 교수는 경인일보 지면에 연재했던 '질주하는 역사 철도'에서 수인선은 드라마와 같다고 정의한 뒤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인선은 드라마같다. 아름다운 장면들과 이야기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또 플롯도 있다. 수원역과 수인역의 발단이 대단원이라면, 야목역과 군자역은 전개요, 소래역은 절정이다. 해변과 소나무 숲이 일품인 송도역은 지나간 소래포구의 풍경이 못내 아쉬운 관객을 위해서 한 차례 더 되풀이하는 유사유추번복이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들과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와 대화도 있는,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모두가 관객이었던 작은 대하드라마였다. 수인역은 사람과 사람이, 이웃과 이웃이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소통하며 물정과 시국을 걱정하던 작은 광장이었다. 꼬마기차 수인선이 만든 이곳은 한동안 경기-인천의 아고라였던 셈이다.(후략)"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민의 에피소드를 실은 증기기관차가 객차 6량과 화물차 7량을 달고 수인선을 하루 평균 7차례나 운행했다. 당시 송도역 앞에는 협궤열차를 타고 와 농수산물을 파는 아낙네들의 '반짝시장'이 유명했다. 야목리 쌀과 군자 천일염, 소래의 각종 수산물을 열차에 싣고 와 송도역 앞에서 장을 벌인 것이다.

▲ 인천이나 소래에서 생선과 새우젓을 가득 담아 수원쪽으로 행상을 떠나는 아낙네들과 채소를 한 바구니 이고 도시로 채소장사를 나서는 여인네들로 가득했던 수인선 협궤열차. '격동한세기 인천이야기'(다인아트)에서 발췌.

그러나 버스 등 대체 교통수단이 속속 등장하면서 수인선 운영은 적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철도청은 1979년 송도~남인천역간 5.9㎞의 운행을, 1992년 소래~송도역의 운행을 중단했다. 수인선복선전철화 계획이 구체화된 지난 1994년에는 한양대역~송도역 26.9㎞ 구간을 폐쇄하고 수원~한양대역까지만 운행했다. 이 무렵 하루 평균 이용객은 250명, 연간 20억원이 넘는 적자가 났다. 1995년 12월 31일에는 이 노선마저 운행을 중단하며 수인선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것들은 우리를 그리움에 젖게 한다. 수인선 '꼬마열차' 도 그런 아쉬움과 추억을 남기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천의 '명물' 중 하나였다.

철도청이 수인선 폐쇄 방침을 세웠을 때 관광 가치를 내세워 보존하자는 여론도 높았지만 철도청은 결국 서해안시대의 개막과 함께 급증하는 인천~수원간 물동량을 감안해 수인선 전철 복선화를 결정했다. 2012년 6월30일 수인선 복선전철사업 구간중 송도에서 오이도간 13.1㎞에 최신식 전동차가 투입돼 운영된다.


수인선 건설후 1978년까지 운행한 증기기관차, 1969년 첫 도입돼 증기기관차의 퇴역후에는 홀로 수인선을 누비며 중년층의 뇌리에도 선명한 꼬마 기관차가 달렸던 협궤선로는 아니지만, 인천과 경기 서남부권의 21세기 네트워크를 형성해 줄 수인선이 재개통하는 것이다.

/김영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