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제정 당시로 보면 양성평등 이슈는 법과 제도 속에서의 여성참여 저해의 제도적 개선, 공적 영역의 여성참여를 저해하는 군경력 가산점제 폐지 등을 포함한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실시 요구,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던 호주제 폐지를 포함해 가정폭력 및 성폭력 등 여성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 요구, 정부 정책 과정의 여성 참여 확대 등이었다. 1995년 법을 제정하면서 세계화에 걸맞은 여성정책을 약속했던 문민정부를 넘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법이 정한 가치와 목표가 한국사회 전역에 반영되어 여성의 실질적 지위와 삶의 변화로 나타났을까?
물론 이제 성이 직업 선택의 기회와 활동을 제한하지는 못한다. 즉, 기회는 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과 여전한 문화적 배경은 차별적 결과를 낳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여성단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약속을 해 왔지만 '2012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7%로 OECD 평균 61.5%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이고, 이마저도 여성 노동자의 43%는 저임금과 안정성이 위협을 받는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임신, 출산 후 재취업을 하는 40대 이상 여성 취업자의 대부분은 경력과는 상관없이 비정규직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오늘 한국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2% 수준으로 20~30대에 비슷했던 남녀 간 임금 수준은 40대 이상에서 크게 벌어지면서 양성 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중 하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화 현상으로 이어진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의 '고위직 여성비율 확대의 중요성: 아시아의 시각'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 이사회 내 여성비율은 1%, 최고경영진 내 여성비율은 2%로 아시아에서 꼴찌 수준임을 밝히고 있다.
물론 기업 고위직뿐 아니라 중간 관리직만 가도 여성 비율은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한국 대졸자 중 여성비율은 48%, 신입사원 때는 40%로 다른 아시아국가와 비교하면 평균수준은 되지만, 중간 및 고위급 관리자 때는 6%로 현격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는 그 원인을 육아와 가사와 같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이중의 부담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기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공직은 한 국가 정책의 표준이다. 이명박정부 들어와 TV에 비치는 청와대 참모의 회의 장면은 100% 흰색 와이셔츠의 모임이고, 17명으로 구성된 국무회의 역시 여성가족부장관을 포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고위 공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공직 내 여성 공무원 비율은 41.8%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4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6.3%로 여전히 낮은 상태이고, 2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2.4%에 불과한 실정으로 17년 전이나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전 여성단체 대표들이 차기 연도에 여성관련 예산 확대를 위해 기획처장관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 때 개념있다고 알려졌던 그 장관은 여성지위 향상을 위해 여성 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우리에게 이미 양성평등 사회를 넘어 여성상위 시대가 되어 도리어 남성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자신도 월급을 타다 주기만 하지 모든 가계 경제는 자신의 부인이 관리하고 본인도 용돈을 받는 처지라는 말로 형편없는 성인지 의식을 드러냈다. 오늘 한국사회의 흐름을 움직이는 위정자의 의식은 그 사이 얼마나 달라졌고,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최근에는 간담회조차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니.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17년 전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글로벌 젠더 보고서가 증명하고 있다. 135개국의 성 평등지수 조사를 해 보니 우리는 107위라는 우울한 결과가 여성주간에 한국여성 정책 수준을 객관화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