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원영 / 인하대 겸임교수·극단 십년후 대표
말기환자들을 돌보던 한 간호사의 깨달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환자들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후회하는 것들은 놀랍게도 같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내 뜻대로 살 걸'입니다.

남들과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후회는 '일 좀 덜 할 걸'입니다. 회사 일 때문에, 승진 때문에, 또는 돈과 명예를 더 얻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쌓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다음은 '화 좀 덜 낼 걸'입니다. 화를 낼 당시에는 화낸 이유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기 십상입니다. 당연히 둘 사이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겠지요. 다음은 '친구들을 더 챙길 걸'입니다.

임종 직전에 가서야 비로소 오래된 벗들의 소중함을 깨닫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이미 단절된 상태였습니다. 다음은 '좀 더 웃으며 즐겁게 살 걸'입니다. 즐거움이 곧 행복입니다. 늘 일에 치여서, 또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때문에 순간순간의 행복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산 것을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현재적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성찰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내일은 언제야?" "자고 나면 내일이지." 다음 날 아이는 또 묻습니다. "엄마, 오늘이 내일이야?" "아니, 자고나야 내일이지." 결국 아이는 내일이 영원히 없다고 여기겠지요. 사실 우리는 현재만을 접하며 삽니다. 그런데도 늘 내일을 걱정하며,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며 삽니다.

'현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시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기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감동이 일고 기적이 미소 지으며 다가옵니다.

눈코 뜰 새 없던 유명 연예인 지미 듀란테에게 참전용사들을 격려하는 무대에 서 달라는 청이 있었습니다. 시간 내기가 어려웠던 그는 단 몇 분만 참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오른 그가 무려 1시간이나 공연을 했습니다. 이를 궁금해 하는 초청자에게 그가 말합니다.

"나도 곧 내려올 생각이었지만 앞줄에 앉은 두 용사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소. 보세요. 둘 다 한쪽 팔을 잃은 사람들인데, 남은 한 손을 옆 사람 손바닥에 부딪치며 내게 박수를 보내지 않소? 저들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내려올 수 있겠소?"

고통스러운 일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의미있게 해석해 낼 때 비로소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고통은 기쁨의 전주곡입니다. 비가 온 뒤에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수 서유석이 꽤 인기가 있던 시절, 월남파병 반대를 말한 탓에 3년 동안 방송출연이 금지되었습니다. 삶은 점점 궁핍해졌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이 그리웠고, 그럴수록 절망감은 깊어졌습니다. 자신의 울분과 좌절감을 노랫말에 담았습니다. 훗날 이 노래가 그를 최고의 가수로 다시 서게 했습니다. 바로 '가는 세월'입니다.

11살에 아버지를 잃고 일을 해야만 했던 불운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인쇄소 견습공을 하고, 증기선의 키잡이를 하는 등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사업을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힘들었던 경험들을 소재로 글을 썼습니다. 바로 마크 트웨인이란 필명으로 '톰소여의 모험'을 쓴 새뮤얼 클레멘스의 이야기입니다.

현재적 삶이란 지금 상황이 가장 귀하다고 여기는 삶입니다. 현재적 삶은 행복을 초대합니다. 기쁠 때는 기뻐하면 되고, 슬플 때는 슬퍼하면서도 상황을 아름답게 해석해 내면 됩니다. 이럴 때 고통의 경험은 성장의 자산으로 탈바꿈합니다. 의미있는 해석이 주는 축복입니다. 요즘 삶이 어떠냐는 질문에 모든 분들이 이렇게 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지만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