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슬 / 협성대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시인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

모처럼 수원화성박물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석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누군가 백석이 수원 백씨라는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하자 '나타샤'는 누구인가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자야'가 당연히 그 시의 주인공 '나타샤'일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나타샤가 다른 여인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자 잠시 모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백석과 함께 톨스토이의 대하소설을 영화화한 '전쟁과 평화'를 함께 보고 나오면서 백석이 자야에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고 했다는 말로 나타샤의 정체는 일단 확인되었다. 그 후 모든 여성이 나타샤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빙수를 하나 시켜 나누어 먹으려는 우리 부부에게 함께 자리한 분이 '두 분이 다정하게 나눠 드세요'라고 말한다. 필자가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라고 유머를 던지자 좌중에 또 다시 웃음이 퍼진다. "한 번도 제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는 말을 안했거든요." 여성들은 모두 나타샤가 되고 싶어하는 '나타샤 병'이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문학계에 이상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백석(1912~1995) 열풍이다.

이 기류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가 걸어온 문학적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올해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석 문학전집'이 출간되고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열리는 등 백석 문학축제 열기가 뜨겁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해방 후 북에 남아 있었던 탓에 분단체제 중 그의 존재는 문학사에 등장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88년 납북·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이며 최근 들어서야 그가 1995년 1월에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금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타올랐다. 백석을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만 총 600여 편에 이를 정도로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일반 대중들의 사랑도 한 몸에 받고 있는 시인이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에 출간된 '백석문학전집1 시'와 '백석문학전집2 산문'에는 광복 이후 백석이 북에 머물면서 1950~60년대에 쓴 시 3편과 산문 4편이 포함되어 있고, 번역시와 번역소설(고요한 돈강 2권) 등 3권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백석문학전집1 시'와 '백석문학전집2 산문'은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으로 그간 진행되어 온 백석문학의 집대성과 정본화 작업에 큰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6월 30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열린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열기는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학술대회는 발표자나 지정 토론자뿐만 아니라 일반 연구자들의 열띤 질의와 토론으로 저녁 7시 가까이까지 진행되어 백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백석의 대표시 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낭송으로 학술대회의 열기는 더해갔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1936년 시집 '사슴'을 출간하면서 혜성과 같이 문단에 등장한 그는 그해 4월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기생 자야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문재를 겸비한 자야에게 숙명적으로 이끌리게 된다. 북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논조의 글을 쓴 백석은 1959년 1월 평양에서 삼수군 관평리의 현지지도원으로 내려가 양치기 목동으로 30여년의 세월을 살게 된다.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되어 양치기 목동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천재 시인의 비극적 운명 앞에서 백석의 인생과 예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은 나타샤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일찍이 여성의 '나타샤 병'을 간파했던 백석을 떠올리면서 낭만과 서정을 상실하고 찰나적 사랑에 탐닉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가여워지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