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자 /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를 감상할 때는 영화 팩트보다는 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의도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더 관심이 가면서 영화를 좀 더 인문학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만 좇는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시원스럽게 한바탕 웃었다면 그것으로 몇 천원의 가치는 있겠지만 그조차 없는 영화는 정말 돈이 아까울 때가 많다.

최근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350만을 동원했다는 '연가시'이다. 이미 극장가는 바람이 한번 훑고 지나가 심야 시간만 상영을 하는 관계로 늦은 시간에 열대야를 피하면서 조금은 한가로이 영화를 즐길 수가 있었다. 충분한 메시지를 담은 내용과 화면을 꽉 채운 영상미, 그리고 리얼한 배우의 연기가 충분히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고요한 새벽녘 한강에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오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메뚜기, 사마귀 등과 같은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을 만들어 인간이 감염된 이후 인간의 뇌를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해 익사시킨다는 것이다. 짧은 잠복기간과 치사율 100%, 4대강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가는 '연가시 재난'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사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국가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하지만, 이성을 잃은 감염자들은 통제를 뚫고 물가로 뛰쳐나가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제약회사 영업직원인 한 가장은 아내와 자녀들이 연가시에 감염된 것을 알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영화 자체만 보자면 재난 영화다. 실재 존재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되면 인간이 감염되지 않을까라는 가정 속에서 본다면 분명 재난 영화다. 특히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플루가 돼지 감염에서 시작되었다는 황당한 초기 발표를 생각하면 뭐 그리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때도 연가시처럼 제약회사 음모론이 있었던 걸 기억해 본다면 더욱 그럴 듯하다. 그러나 조금 달리 해석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지금 무엇에 감염되어 살아가고 있을까? 요즘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인이 모두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어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듯하다.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면 물로 뛰어드는 자기 하나의 희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체면도, 이면도 다 버리고, 형제도, 부모도, 자식도 팽개치고, 타인을 해치게까지 하는 무서운 감염이다. 특히 영화 속 연가시는 '윈다졸'이라는 치료제가 있지만 '돈'에 감염되면 아직은 치료제가 없다. 어쩜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오로지 끝은 파멸만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돈에 감염된 사람들의 말로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유산을 두고 싸우는 우리나라 대표 재벌의 형제간 법정 다툼, 형제 간 회사 장악을 위한 모 기업의 형제간 물고 물리는 싸움질, 살 만큼 살텐데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공직자의 모습,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나 남편을 죽이고, 유산 상속을 위해 부모를 살해하는 현실, 이 모두는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그 정도의 극단적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황금만능주의의 '돈'에 감염되어 살아간다. '부자되세요'라는 신년 인사를 거부감 없이 듣고 또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경제를 살려 부자 만들어 줄 거라는 말을 믿고 투표 용지에 도장 꾹 눌렀다면 이미 나도 '돈'에 감염된 거다. 몇 년 전 부동산 광풍이 불 때 우리는 어땠나? 자고 일어나면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을 보면서, 또 부동산 투기로 얼마를 벌었다는 주변 사람들 소문에 나만 뒤지는 듯해 발을 구르거나, 웬걸 그 대열에 못 낀 것이 안타까워 우울했거나, 무리하게 아파트를 장만했다면 내 병도 이미 중증이다. 연가시에서는 정부가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기로 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더 큰 부(富)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더해 국가·사회적으로는 황금만능주의를 키우는 틀을 너무 많이 만들어 내면서 도리어 병을 전파하고 있다. 이 병을 고칠 큰 지도자가 필요하다. 몇 달 뒤 분명한 기회가 있다. 우리의 선택 여하에 따라 이 심각한 병은 치유될 수도, 더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