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시중자금의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불안심리가 확산한데다 부동산 경기침체, 주식시장 변동성 증가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비가 위축되고, 이 같은 상황이 다시 경기둔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제일 못 믿을 곳이 부동산ㆍ주식시장"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하나, 우리, 신한, 기업은행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과 적금 잔액은 지난해 말 403조원에서 올해 7월 말 418조원으로 15조원 늘었다. 예금 증가율은 3.3%, 적금 증가율은 10.6%에 달한다.
펀드에서는 채권형이 인기다. 올해 들어 주식형 펀드에서는 4조2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채권형 펀드에는 4천억원 이상이 유입됐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도 은행 예금이나 채권에 돈이 몰리는 것은 세계적 경제위기로 시장에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적절한 수익률을 보장할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다.
주택경기 침체는 '부동산 불패'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KB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를 보면 지난달 전국 평균 주택가격은 6월보다 0.1% 떨어졌다.
월간 기준으로 전국 주택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0년 7월 이후 2년 만이다.
지난해 전국의 주택가격은 2010년보다 6.9% 상승했다. 하지만 올해 7월 현재 주택가격은 2011년 말보다 불과 0.5% 오르는데 그쳤다.
주식시장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미국과 유로존 소식에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올해 3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을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2,045선을 찍었다.
하지만, 넉달만인 7월에는 그리스와 스페인의 재정위기 우려가 극에 달하며 1,770선 밑까지 물러났다.
◇집값 하락에 '주택연금' 등 관심
결국 투자자들은 고금리는 아니지만 안전하게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예ㆍ적금과, 채권, 연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부동산자산 비중이 크고 금융자산이 적은 고령층은 집값이 더는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주택연금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택연금 신규가입은 총 2천37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천336건)보다 78.1% 늘었다.
하루 평균 가입건수도 지난해 11.0건에서 올해 19.3건으로 75.5% 증가했다.
공사 관계자는 "집값 상승 기대가 낮아지면서 연금의 안정성에 주목하는 고객이 많아졌다. 집값 하락에 주택연금 가입 대상인 9억원 이하 주택이 늘어난 점도 가입자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끝이 안보인다"
전문가들은 경기둔화 속에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는 것이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도 겪는 현상이다.
그러나 돈이 안전한 금융상품에 몰릴수록 가계 소비가 둔화하고 기업 투자는 위축된다. 이는 결국 안전자산 선호→자금의 단기부동화→소비위축→경기침체→위험자산 회피의 악순환으로 번질 수 있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기 전망도 불투명함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경제연구원 이부형 연구위원은 "돈이 자본시장에 흘러나와 이윤을 창출하고순환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 자산을 섣불리 다른 투자처로 옮기려는 행동이 억제되는 상태다"라고 분석했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민간부문 부채축소, 국외에서는 유럽 재정위기 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안전자산이나 단기금융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