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렬 / 가천대 CEO아카데미 원장
입에서 젖 비린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는 1969년 11월 8일 당시 42살이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가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자 야당 원로였던 60대 유진산 신민당 부총재가 내뱉은 독설이었다. 1년 뒤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YS와 45세의 김대중(DJ) 의원, 48세의 이철승씨 등 40대 기수 세 명이 대결했다.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긴박한 경선에서 DJ가 YS를 꺾으면서 40대 기수론은 30여년 지속된 양김시대를 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생으로 44세에 집권해 53세였다. 50세인 안철수 돌풍이 이어지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기성 정치권의 비판은 안 교수가 백면서생으로 구상유취라는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안 교수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직후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예능프로 출연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해 대세론으로 여론조사에서 4년여 부동의 1위인 박근혜 후보를 3.9%p 앞서 48.8%의 지지율을 보여 돌풍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존 정치 불신이 높아가면서 안철수로 대변되는 신진세력의 급부상은 여-야당의 존재와 정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존의 사고, 기존 관행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정치판에 투영돼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첫째 현상은 정치 패러다임 전환으로 정치게임의 룰을 바꾸는 극단적 변환의 파열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를테면 구세대 기존 정치인들은 출마선언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이라든가, 독립문, 광장시장 등 대부분 공간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장소를 선택해서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출사표를 올렸다. 캠프마다 참석자 숫자를 부풀려 발표하지만 대중동원은 무의미하다. 이에 반해 안 교수는 힐링캠프라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 수백만명에게, 그것도 기자 출신의 여교수가 인터뷰 형식으로 쓴 자신의 저서를 소개한다면서 자연스럽게 출마의지를 애매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밝혔다. 재미와 흥행을 도모하는 정치의 쇼(Show)화가 미디어의 상업성에 힘입어 극적으로 연출된 셈이다. 속도 모르는 둔감한 아날로그 시대 정치인들은 출마선언 하고 정정당당하게 나서라고 채근하지만 안 교수는 저널리즘 정신이 실종된 미디어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날마다 홍보기사를 통해 캠페인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둘째, 안 교수가 조직이 없다고 폄하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무지한 기성 아날로그 세대들의 착각이다. 과거 인연(因緣)은 그야말로 인연(人緣) 즉 인맥(人脈)으로 맺어졌지만 요즘은 인터넷 인연이라 할 전연(電緣)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모바일 서비스 등으로 만나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로 연결되는 전연이 실생활에서 만나는 인연의 수를 앞서고 있다. 미니 홈피로 인맥을 관리하고 채팅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네트워크가 사이버세계를 조직화하고 있다. 또 안 교수는 전국 24개 도시를 순회하는 토크 강연 형식으로 적게는 1천500명에서 많게는 3천명 정도까지 몰린다는 '청춘 콘서트'라는 대화 강의를 통해 "스펙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등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구호를 내걸고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일종의 팬덤 형성을 완료한 것이다.

셋째, 인터넷세대라 할 20~40대들은 안 교수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예방 백신을 개발한 그는 당연히 상업화할 만한 데도 불구하고 10만~20만원대 가치가 있는 백신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사회라는 대한민국에서 '더불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며 대기업들도 외면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만한 자신의 주식 절반을 내놓고 재단을 설립했다. '정치는 타이밍'이라 하지만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 마케팅의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에 걸맞게 절묘한 시기에 이런 선행을 통해 착한 이미지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장치기획 이벤트를 집행하고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가운데 안 교수 인기가 폭발적 파괴력을 갖고 기존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이다. 타깃을 세분화해서 '분노를 잃어버린 20, 30대의 반란'을 조직화하는 안 교수의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정치실험이 어떻게 귀착될지 두고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