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누구는 바람개비가 되어 더 힘을 내고, 누구는 줄 끓긴 연이 되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조직과 국가까지도 같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요? 바로 '해석'입니다. 주어진 고통을 의미있게 해석해 낸 사람들이 도약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으로 해석한 사람들은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생각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에스키모 사람들은 혹한이 몰아치는 밤, 얼음 위에서 자도 동상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걸립니다. 교육을 통해 동상에 걸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수는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묻는 제자들을 어두운 방으로 데려갑니다. 학생들이 방을 가로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불을 켭니다. 모두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은 외나무다리였고, 그 아래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외나무다리를 건너겠다는 제자들이 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곳을 지나왔는데 말입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생각이 자신이나 사회에 유익함을 줄 수 있는 해석으로 이어질 때 기적 같은 성공이 이루어집니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로부터 '못생겼다'며 학대받고 자란 가난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빠에게 적대감을 갖는 대신에 다락방에 올라가 그와 반대되는 상황을 상상하며 행복해했습니다. 상상 속의 아빠는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식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한 장면을 그리며 미소 짓습니다. 훗날 그녀는 말합니다. 자신은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 못생겼기에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녀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라며 아빠의 폭행에 시달리던 소년이 있습니다. 아빠가 일하는 농장에서 일하던 소년은 틈만 나면 석탄으로 상상 속 동물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리곤 했습니다. 드디어 소년은 그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월트 디즈니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매사에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안 될 이유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늘 '문제'를 탓하고 '상황'을 저주하며 세상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과제'를 찾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 과제를 해결합니다. 그것이 행운의 씨앗이 되어 세상에 우뚝 서게 합니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비닐하우스에 살던 소년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 때는 가출을 하는 등 방황도 했습니다. 늘 우시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운동에 전념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새 집을 선물하겠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습니다. 이제 20살 청년이 된 그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도마의 신'으로 불리며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가난이 왜 부끄러워요?"
어느 작가는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모습을 이렇게 해석해냈습니다.
"어느 날 새장이 열리고, 숲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때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경제상황이 어렵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그러나 이 힘든 상황이 우리를 주저앉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강할수록 바람개비는 더 빨리 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의미 있게 해석해낼 때 고통은 행복의 씨앗이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