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운 / 소설가
우리 법률은 사실이라 해도 공연히 공표하여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면 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이 아닐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명예훼손이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측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장인을 지목하여 빨갱이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이혼이라도 하란 말이냐?"고 되물어 한나라당의 공격을 일거에 물리쳤다. 노무현 후보 장인의 과거가 비록 사실이라 해도 사위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자격 문제로 비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 당시 민심이었다.

며칠 전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박근혜 그년'이라는 막말 표현을 썼다. 이제껏 말을 바꿔가며 박근혜 의원을 모독중인데, 그는 사실과 정당한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이종걸의 패배이다. 이것은 마치 나꼼수가 불길같이 일어나다가 멤버 중 하나인 김용민의 상식 이하의 욕설에 지친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 새누리당을 응징하겠다던 유권자들이 도리어 그 새누리당을 압도적으로 밀어준 지난 총선과 맥을 같이 하는 사건이다.

사실이라도 바르고 정당하게 전달돼야만 진짜 사실이 된다. 그래야 사실이 힘을 쓴다. 잘못 전달하면 도리어 역풍을 맞는다. 이완용이 애국하자거나 박정희가 민주주의 발전시키자고 하면 그런 말에는 힘이 붙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한 선수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피켓을 치켜든 건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나 또한 틀린 것이다. 올림픽 정신과 규칙을 위배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대한민국 대통령이 영유권 분쟁중인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올림픽 축구 한일전에서 통쾌하게 승리하여 온 국민이 들떠 있는 이 기쁜 축제분위기가 한 선수의 실수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일부 지류에 생긴 녹조 사진을 확대 촬영하여 녹조는 4대강 보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우겨대던 언론들도 이제 잠잠해지고 있다. 그 거짓 위에 마침 비가 내리고 있다. 이처럼 사실이 아니거나, 일부 사실을 거짓으로 포장하면 힘을 못쓰는 법이다. 녹조 사진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이 올린 사진은 4대강 보에 생긴 것이 아니라 인근 지류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아흔아홉 개가 사실이어도 한 가지 거짓 때문에 전체가 신용을 잃는다.

6월 가뭄 때 일부 언론은 당시 가뭄이 104년만에 찾아온 최대 가뭄이며, 4대강 때문에 생긴 재앙이라고 호들갑을 떤 적이 있다. 가뭄이 비록 가혹하긴 했으나 일시적인 것이고, 결코 104년만의 최대 가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며칠 지나지 않아 확인되었다. 그 당시 4대강 때문에 가뭄이 들었다고 선동한 언론들은 4대강에서 멀고 먼 지방의 마른 저수지 사진을 찍어다가 신문에 올리곤 했다. 심지어 섬에 있는 마른 저수지 사진까지 올렸다. 거짓은 이처럼 일말의 사실조차 무력화시킨다.

며칠 전 경찰이 김학규 용인시장에 대해 비슷비슷한 피의사실을 4번째로 유포하여, 중앙지 지방지 지역지 할 것없이 대서특필되었다. 더욱이 청탁수사의 대가로 10억원이 넘는 금품을 수수하고 구속까지 된 경찰수사관 등이 소속된 부서에서 무려 1년6개월씩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용을 주면 주는대로 복사기처럼 받아쓰고, 청탁수사로 수세에 몰린 경찰이 앵무새처럼 외우는 걸 그대로 복창하는 일부 언론을 보노라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 앞에 놓인 인권이라는 게 얼마나 하찮은지 실감한다.

설사 경찰이 찔러주는 보도자료라도 사실을 가려 보도할 때 기사에 힘이 생기고, 그런 언론사에 권위가 붙는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보도자료에서 되레 한 발 더 나아가 '온 가족이 검은 돈', '수상한 가족', '뇌물 수금 나선 용인시장', '먼저 돈 요구', '줄줄이 구속' 따위의 모욕적인 표현으로 푸닥거리까지 해주었다. 이런 언론들은 결코 독자를 감동시키거나 역사발전에 기여할 수가 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종질을 해가지고는 권력자나 기득권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일제 때는 친일언론, 유신 때는 유신언론, 군부 때는 군부언론, 지금이라도 우리 언론의 슬픈 자화상을 지우고 떳떳하게 새로 그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