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슬 / 협성대 인문사회과학대학 학장·시인
폭염과 더불어 런던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기록적인 열대야도 우리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에 열광하는 가운데 물리칠 수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 일요일 장대비를 뚫고 예술의 전당으로 '루브르박물관전'을 보러 갔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화와 전설을 중심축으로 고대 유물들과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한 후대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회였다. 신화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이야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신화를 모티프로 현대적 의미를 재구성해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강력한 힘을 지닌 신화 속의 신들에게서조차 사랑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실수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며 허물투성이인 나 자신을 은근히 정당화해본다.

18세기 프랑수아 르무안의 작품 '올림포스'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궁전으로 일컬어지는 올림포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가운데 최고의 신 제우스가 자신의 상징인 독수리를 옆에 둔 채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에 결혼의 여신인 아내 헤라, 그리고 제우스의 딸인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있다.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사랑과 결혼과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는듯하여 몽상에 빠져 있던 중 홀연 '아폴론과 다프네'가 눈에 들어온다.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의 극적 일화가 묘사되어 있는 아름다운 님프 다프네와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 이야기. 왜 화살에는 황금 화살과 납 화살이 있는 것일까?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가 여기에서 탄생된다. 활을 만들고 있던 사랑의 신 에로스는 백발백중 명 사냥꾼인 아폴론에게 활을 포기하라는 조롱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황금의 화살을 쏘아 다프네를 사랑하도록 하는 한편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쏘아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도록 했다. 사랑에 빠져 필사적으로 다프네를 쫓아다니는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가 두려워진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자신을 월계수로 변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사랑하는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한 순간 아폴론은 눈물을 흘리며 맹세한다. "지금부터 내 머리는 너의 잎으로 장식하고, 저 영광의 대회에서 우승한 청년과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싸워 이긴 용사의 머리에 너의 잎과 가지로 만든 관을 씌워 찬양하겠다." 자신의 머리를 다프네의 월계수 잎으로 장식하는 순간 아폴론과 다프네는 하나가 되고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언제나 월계관을 쓰고 있는 아폴론을 만나게 되고 델포이 신전의 시와 노래, 그리고 4년마다 열리던 제전의 우승자의 머리에 최고의 영예의 상징인 월계관이 씌워지는 것을 보게 된다. 계관시인의 유례 역시 여기에서 나온다.

이례적인 폭염으로 온 대지가 달아올랐던 올 여름, 우리의 마음은 런던 올림픽으로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연이은 금메달 소식으로 우리의 역량을 세계에 과시하던 시간을 뒤로 하고 올림픽 폐막과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올림픽 출전 64년 만에 첫 메달을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일전의 응어리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린 축구에서의 쾌승은 가슴 벅차다. 절제와 노력을 통한 자기완성의 극적 순간이다.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은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가 대제국 페르시아를 전멸시킨 기적 같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격전지인 아테네 근교 마라톤으로부터 아테네까지 전력 질주했던 한 병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시작되었다.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그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라톤이든 아폴론의 월계관이든 자기완성을 향한 필사적인 노력이 근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완성을 향해 결연하게 나아가는 자야말로 월계관을 쓸 수 있는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다. 올림픽의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보여준 우리의 역량은 이제 한국이 후진 약소국이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우뚝 섰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스스로 당당해지고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 속에서 세계적인 것을 발굴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한 계기가 된 것이 이번 올림픽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독서와 사색과 성찰의 계절이다. 올림픽의 열기를 심화시켜 더욱 굳건한 한국의 토대를 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