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호 / 아주대 경영대학 교수
아빠가 아이를 나무라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의 연필을 훔쳤기 때문이다. 아빠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한참 혼을 내던 아빠는 안쓰러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연필이 갖고 싶었니? 진작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그랬어? 아빠 회사에서 얼마든지 좋은 연필 갖다 줄 수 있는데…."

아들이 학교에서 연필 훔쳤다고 야단치면서 정작 자신은 회사 물건을 그냥 가져오겠다는 건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언론에 난 정치인 등의 부정, 경제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엄청' 흥분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이런 저런 작은 부정과 작은 비리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센터의 기념품 매장이 잘되고 있어 거기에는 300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해 매출액이 40만달러 정도 되는데 재고 조사를 해 보니 15만달러 정도가 비는 것이었다. 물건은 없어졌는데 돈이 안 들어온 것이다. 틀림없이 도둑의 짓이라 생각하고 탐정을 고용해서 감시를 했다. 드디어 몰래 카메라에 한 사람이 잡혔다. 현금통에서 돈을 슬쩍하는 자원봉사자였다. 그 사람에게 변상을 하게 하고 조용히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현금 유출은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공모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작은 물건을 하나씩, 현금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이었다. 음악이나 연극을 애호하는 교양있는 그리고 부족할 것도 별로 없는 선량한 은퇴자들이 말이다.

베이글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폴 펠드먼이라는 사람은 직장에 다니면서 우연히 둥그런 빵인 베이글을 사무실에 공급하게 되었다. 일 잘한 직원들에게 칭찬으로 베이글을 사다 줬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다른 부서에서도 베이글을 갖다 달라 해서 매주 금요일 베이글을 휴게실에 갖다 두고 빵값을 스스로 상자에 넣도록 했다. 회수율은 95%였다. 100%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폴은 직장에 문제가 생겨 아예 사표를 쓰고 베이글 장사에 나섰다. 여러 사무실을 섭외하여 아침 일찍 휴게실에 베이글을 갖다 놓고 점심 때 남은 빵과 돈상자를 수거해 왔다. 이때 평균 회수율은 87%였다. 과거 자신의 회사에서 기록했던 95%에 많이 못 미쳤다. 가끔은 돈상자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했다.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 웅진, 2005)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실험을 했다. 열두 개의 숫자 조합을 주고 합이 10이 되는 숫자를 찾는 약간 까다로운 문제를 5분 동안 풀게 했다. 20개 문제인데 정답 하나에 50센트를 준다고 인센티브를 걸었다. 감독자가 채점을 해 보니 평균 4문제 정도 풀었다. 그런데 피험자 스스로 채점하게 했다. 답안지를 파쇄하도록 하고 말이다. 그러니 얼마든지 거짓을 이야기하고 돈을 탈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4문제가 아니라 6문제로 정답이 늘어났다. 그러니까 두 문제를 부풀린 것이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높여 봤다. 정답 하나에 10달러를 준다고 해 봤다. 근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딱 2문제 정도만 부정을 저지른 것이다. 이 실험은 미국 사람, 이스라엘 사람, 이태리 사람, 중국 사람들에게도 했는데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에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청림, 2012)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른다는 것이 여기저기서 밝혀지고 있다. 그것도 조금씩 말이다. 에리얼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부정을 저지른다." 조금씩 저지르는 이 부정을 모아 보면 사실은 어마어마한 것이 될 수 있다. 케네디예술센터 부정행위 자료는 너무 크니 베이글맨 통계를 기준으로 한다면 13%가 부정이다. 그것의 반만 잡아도 6%면 엄청나지 않겠나? 은행 예금이자보다 크다.

그러나 이 작은 부정은 얼마든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케네디예술센터에서는 판매액을 잘 기록하게 함으로써 유실을 막았다. 베이글맨이 살펴 보니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또 회사 분위기가 좋을수록 빵값 회수율이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도덕적인 각성을 일으키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라는 이야기다. 혹 회사 물건을 사적으로 쓰고 있다면 지금 당장 배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