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시작하는 또 한편의 노래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패티킴의 '9월의 노래'다. '9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며, 쓸쓸한 거리를 지나로라면,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라는 애절한 가사가 애달픈 가락에 담겨, 9월의 쓸쓸한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해 준다.
실로 9월은 소외의 달이다. 1년 열두 달 중 1, 5, 10, 12월은 화려하고 동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2, 6, 9, 11월은 왠지 적막하고 정적인 느낌을 준다. 바캉스 분위기에 들뜬 8월과, 부산하고 화려한 문화의 달 10월에 끼어 있는 9월은 뚜렷한 특징도, 화려한 이미지도 주지 않는 소외된 달이다. 하지만 9월은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여름의 들뜬 분위기를 접고, 차분히 가을을 맞으며, 나와 내 주변을 돌아 보는 사색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9월은 아름다운 향훈이 마음 속에 젖어드는 향기의 계절이다. 흔히들 가을의 향기를 삼향(三香)으로 일컫는 바, 국향(菊香), 차향(茶香), 인향(人香)이 그것이다.
9월을 대표하는 꽃이 국화이듯이 가을은 국향의 계절이다. 서정주 시인은 국화를 성숙한 누님으로 묘사하여 '국화 옆에서'를 노래했다. 봄 ,여름, 가을의 풍상을 겪고 마침내 한 송이 국화 꽃이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국화 옆에서라고 했을까. 국화를 바라보고 시를 썼으니 '앞에서'가 맞을 듯한데, 구태여 '옆에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사람의 앞모습은 정면으로 바라보아 좋지만, 자칫 자신을 감추고 좋은 면만 보여주거나, 대립되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일본인들이 밥상에 젓가락을 앞으로 향해 놓지 않고, 옆으로 놓는 것도 대립의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뒷모습 역시 숨긴 것을 몰래 엿보는 인상이 남는다. 결국 옆모습이 서로 대등하게, 나란히 한 곳을 응시하는 참모습인 것이다. 사랑은 진정 두 사람이 한 곳을 나란히,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국화 옆에서, 국화 향기를 맡으며, 그렇게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계절이 가을인지 모른다.
가을을 수놓는 또 하나의 향기는 사람의 향기, 즉 인향이다. 꽃들이 저마다 모양과 색깔, 그리고 향기가 다르듯이 우리 인간도 제 각기 생김새뿐만 아니라, 그들이 풍기는 향기도 다르다. 그 사람만이 뿜어내는 묘한 분위기, 그것이 인격이든, 지성이든, 아니면 정서나 성품이든 분명히 그 사람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그 향기는 어쩌면 꽃의 향기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그 향기는 바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인간관계의 장을 장식하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사랑할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향기가 짙게 풍겨 오게 마련이다. 인디언들은 친구를 '나의 슬픔을 등에 진 사람'으로 불렀다. 우정은 슬픔까지 함께 지고 가는 고귀한 애정의 향기인 것이다.
국향, 차향, 인향이 함께 어우러지는 향훈의 계절, 그래서 가을은 정녕 아름다운 계절이다. 9월의 노래를 들으며, 사랑이 오는 소리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