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이른바 '통합 행보'는 그래서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적 배제, 억압, 경제적 소외, 박탈 등으로 점철됐던 시대의 아픔을 예고나 격식을 갖춘 절차없이 불쑥 찾아가면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표는 저절로 온다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았던 일방통행식 권위주의의 부활 그 자체다. 상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러한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대화가 없는 득표에 대한 갈증이 초래한 예고된 이벤트다. 박근혜 후보의 5·16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에 머물러 있고, 유신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면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당위성도, 전태일 열사 재단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이휘호 여사를 예방하는 것은 뜬금없다.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력연장보다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 위한 조치였다"는 홍사덕 전 의원의 발언은 박근혜 후보의 생각을 대신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민주화 이전의 헌법 전문에 명시되었던 '5·16 혁명'은 1987년의 직선제 민주화 개헌에서 삭제되었다. 최근 불거진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해서도 박근혜 후보와 측근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의 조작 과장에 대해서도 "가치없는 것, 모함"이란 입장에서 한 뼘도 바뀐 것이 없다. 2007년 법원의 재심에서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이후에도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자꾸 과거로 가려고 하면, 끝이 없다"는 박 후보의 말에서 규명되지 않은 어두운 역사를 모두 과거로 치부하려는 듯한 왜곡된 역사관의 일단을 본다. 역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통합 행보'는 위선으로 비칠 수 있고, 득표를 위한 선거전략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과제는 경제적·사회적 격차와 정치사회적 갈등의 완화이다. 대선 주자에 대한 지지율이 세대별로 극명하게 엇갈리고, 지역적으로도 일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한국사회의 지향이 사회적 합의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다원주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명백히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다. 건강한 갈등이 아닌 대립의 보편화는 다양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엄중한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도 정파에 관계없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이 일상화되어 있고, 선거는 진영논리에 입각한 패권주의의 쟁투로 전락하고 있다. 공동체가 합의한 사회의 지향과 비전이 없다면 분배와 복지,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라는 정치인들의 구호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동체주의적 비전의 상호보완과 통합이 기획된 행보와 이벤트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역사는 엄혹(嚴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