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 드문 비에 추풍 일어나니/ 가뜩이나 시름 많거늘 귀뚜라미 소리까지…'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만은/ 내 시름 쌓이니 잎잎이 추성(秋聲)이로다…' 전자는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이정보(李鼎輔), 후자는 동시대 김상용(金尙容)의 오동잎 시조다. 그만큼 오동잎 슬픈 노래는 내력이 깊다. 나뭇결이 곱고 단단해 거문고, 가야금, 나막신, 장롱 재료로 그만인 오동나무가 그 잎새만은 슬픔의 상징인 까닭은 무엇인가. 여름철 무성한 나뭇잎이 '이승에 밀려든 녹색 밀물―창조(漲潮)'라면 떨어지는 오동잎은 가을의 조락(凋落) 썰물―낙조(落潮)의 대표적인 이파리가 아닌가.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를 허스키 목소리로 노래한 가수 최헌이 이 가을 밤 오동잎처럼 휙 떨어져 하늘로 올랐다. 이왕이면 오동잎 한 잎 두 잎 눈에 띄게 떨어지는 늦가을 밤으로 승천 시간을 늦췄더라면 어땠을까.

최헌에게 '죽음의 릴레이 방망이'를 넘겨주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바다가 육지라면'을 애수 띤 가락으로 청승맞게 부른 조미미도 하루 먼저인 9일 영면(永眠)에 들었다. 식도암의 최헌이 1년여의 죽음 고생을 했다면 조미미는 단 한 달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암 판정 직전까지도 KBS '가요무대'에서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의 연평도' 등을 부르지 않았던가. 1970~80년대 대중의 찌든 삶에 큰 위안이 됐던 두 대형 가수, 나이도 65세 64세 한 살 차이로 하루 사이에 세상을 뜬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는 지난 6월 1일 '세계 암 환자가 2030년까지 75%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안에 그야말로 신묘한 암 예방 신약이라도 개발되지 않는다면 암에 걸리지 않는 게 복권 당첨만큼이나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늘나라에도 좀 있으면 벽오동 한 잎 두 잎 떨어질까 아닐까. 하늘나라엔 바다가 없어 '육지가 아닌 바다가 원수'라는 노래를 더 이상 부를 것도 없이 내키는 대로 뭍에 오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둘이 하늘나라 신민(新民)으로 만날 수 있을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