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슬옹 / 세종대 겸임교수
최근 케이팝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해외 한국어교육의 거점이 되고 있는 세종학당도 2012년 현재 43개국 90개소나 되는 등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위상이 나라 안팎으로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류 덕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지만 일단 배우고 나면 한결같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 예술성에 반하게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시점에서 한글 자음 'ㄱ, ㄷ, ㅅ' 이름인 '기역, 디귿, 시옷'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바꾸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현대 한글 기본 자음 14자 가운데 세 명칭만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자음은 '니은, 리을'처럼, 모음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 모음이면서 바탕 모음인 'l, ㅡ'를 활용해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명명법 자체가 한글의 과학성을 드러내준다.

자음은 단독으로 음가를 낼 수 없고 모음의 도움을 받아 발음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발음하기 편한 기본모음인 '이'와 가장 약한 바탕 모음인 '으'를 통해 자음의 음가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렇게 두 모음을 통해 첫소리(초성)에서 나는 자음과 끝소리(종성)에서 나는 자음을 동시에 드러내 주는 명칭이 바로 '니은, 리을'식의 명명법이다. 명칭 자체에 첫소리와 끝소리에 쓰이는 용법 자체를 드러내 줌으로써 명칭의 효용성을 최고로 높이고 있는 셈이다.

곧 '기역, 디귿, 시옷'만이 이런 합리적 명명법에서 벗어나 있어 한글을 처음 배우는 이나 일반인이나 모두 이를 헷갈려 한다. 특히 관련 용어인 '키읔, 티읕, 지읒' 등과도 달라 언중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

현재 명칭 '기역·디귿·시옷'
자음 명명법 규칙 벗어나 있어
'기윽·디ㅤㅇㅡㄷ·시읏'으로 써야
관습이라고 유지하는것 잘못
한글 배우는 외국인 느는데
학습에 불편함 줘선 안돼

'니은, 리을'식의 과학적인 명명법은 기록으로는 최세진이 1527년(중종 27년)에 '훈몽자회'에서 처음으로 정리했다. 안타깝게도 잘못된 세 명칭의 전례를 남긴 것도 최세진이었다.

훈몽자회는 한자 학습서였기에 자음 명칭을 한자로 적으면서 한자로 적을 수 없는 '-윽, -ㅤㅇㅡㄷ, -읏'을 이두식 한자로 적다 보니 '기역, 디귿, 시옷'이 된 것이다. 곧 기역은 '其役'으로, 디귿은 '池末'로, 시옷은 '時衣'로 적었는데, '역(役)'은 '윽' 대신 적은 것이고, '末(끝 말)'은 'ㅤㅇㅡㄷ' 대신 비슷한 발음의 훈 '끝(귿)'을 가진 '末'자를 빌려 적고 '읏'은 발음이 비슷한 '옷'의 훈을 가진 '衣(옷 의)'자를 빌려 적었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적고자 했던 이두식 표현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최세진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 명칭이 합리적임을 알았지만 한자에 의존해 설명하다 보니 그런 실수를 했다. 실수라고 한 것은 그가 한글로 병기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글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던 16세기의 실수를 21세기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무척 잘못된 일이다. 1933년에 처음으로 제정된 한글맞춤법에서는 그 당시 관습을 중요하게 여겨 최세진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북한은 1954년 조선어 철자법 제정을 통해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통일을 위해서라도 남한 쪽이 명칭을 바꿔야 한다.

명칭은 학습과 소통의 바탕이자 기본 통로이다. 16세기에 잘못 붙여진 명칭을 관습이란 이유로 지금까지 유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로 인해 어린이들이 학습과 명칭 사용에서 겪는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대학생이나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왜 쉽고 과학적인 한글을 사용하면서 비과학적인 명칭을 유지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기존에 쓰고 있던 '자장면, 태껸, 품세'외에 '짜장면, 택견, 품새'를 복수 표준어로 제정했다. 국민들의 언어 사용 정서를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기역, 디귿, 시옷'을 '기윽, 디ㅤㅇㅡㄷ, 시읏'으로 고치는 일은 '짜장면'을 복수표준어로 수용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시급한 일이다. 일단 복수표준 용어라도 설정해 '기역'을 '기윽'으로 썼다고 괴로워하고 혼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