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수 /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
1970, 80년대 서민들의 재산형성의 과정은 하루하루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야하는 참으로 고단한 길이었다. 쥐꼬리만한 한정된 수입에서 이것저것 쓸 것을 따지다보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부들은 위대했다. 우선 저축을 위한 몫부터 떼어놓고 살림을 시작했다. 눈치 없는 손님이 와서 한 끼를 축내고 가면 주부는 남몰래 배를 주려야 했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적금을 붓고 목돈마련을 위해 계를 들었다.

티끌모아 소중하고도 뿌듯한 성취를 이루어 아이들의 대학 입학금도 만들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그리고 작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상 받고 진한 행복감에 온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함께 했었다.

공급자 중심의 가격책정 탓
천문학적인 아파트 값 형성
거품 빠지자 거래실종 시작
건설경기 전체적 침체 몰고와
철저하고 예외없는 과세 등
구체적인 조처 시작해야

2000년대, 근세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룩한 이 시대 사람들은 좌절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지나친 경쟁, 청년실업, 신분상승의 사다리의 상실, 물질만능의 사회적 풍토, 무엇하나 속 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격차'의 문제가 있다. 의외로 격차의 문제는 '적정이윤 개념의 상실'에서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큰 손님이 아니면 그렇고 그런 손님은 귀찮을 뿐이다. 박리다매는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기성복이 맞춤양복보다 비싸지면서 시장 지배권이 공급자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값은 제 가치보다 점점 높게 매겨졌다.

씀씀이가 커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계층에서는 연봉도 하는 일이나 벌어들이는 수준보다 크게 높아졌다. 값을 정하는 사람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모럴해저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연해갔다.

가격구조의 왜곡은 고비용 저효율 사회의 구조화를 초래해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 편중되면서 곳곳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라잡기가 요원해졌다. 성장의 저변은 약화되었고 사람들은 불만을 넘어서 좌절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요즈음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가 아파트 값이다. 문제의 본질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역설적이게도 값이 내려가서 거래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적정이윤 개념이 실종된 대표적인 사례가 아파트 값이기 때문이다.

공급자가 결정하는 가격은 투기수요에 힘입어 토지비, 건축비, 금융비용, 이윤을 훨씬 넘어서는 기본가격을 형성하였고 거기에 거래이익이 붙어서 천문학적인 아파트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일확천금을 한 공급자는 이익을 챙겨서 떠나고 수요자들만 남은 시장에 투기수요의 거품은 꺼지고 과다하게 형성된 가격이라는 실상이 드러났으니 이 시점의 소유자는 막대한 손해를 보지 않고는 팔 수가 없게 되었다.

사려는 사람은 적정가격을 알 수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거래는 끊기고 고용확충과 시중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핵심이 되는 건설경기는 실종되었다. 더 큰 분양사업을 위해 투입했던 비용은 건설기업을 침몰시켰다. 악순환에 접어들었고 그 비용은 너무도 크다.

이제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투기라는 악순환이 새로 시작되든지, 적정가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든지, 시장의 기능으로 적정가격에다가 최초 공급자가 가져가버린 부분 중에서 일부를 인정해서 새로운 조정가격이 형성되든지 세 가지 중에 하나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이든 고통이 따른다. 일찍이 적정이윤에 의한 적정가격으로 거래가 되었다면 고통의 크기와 기간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적정이윤 개념의 회복은 그동안 간과되어왔고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가 쉽지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꼭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방법은 있다. 적극적인 소비자 운동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에 대한 철저하고도 집요한 예외 없는 과세에 이르기까지, 적정이윤 개념이 우리사회의 기본으로 다시 자리 잡도록 구체적인 조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