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자 /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몇 년 전 잠깐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 집에 머문 적이 있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그 집에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문 앞에 던져진 신문을 주워 들었다.

일본어를 거의 못하는 나는 그저 한자를 통해 오늘 중요 기사를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신문 두께보다 더 수북한 간지는 재밋거리였다.

실용주의 학문 한계에 봉착
마음과 영혼이 윤택한 삶
그 바탕엔 인문정신 있어
수원에서 인문학주간 선포식
화성 탐방 등 다양한 강좌
시민이 알게하는 방법 찾자

식당 홍보부터 대머리치료제, 미용실 신장 개업 등등 상업성 광고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중 거의 매일 한 장쯤은 마을에서 열리는 공익적인 성격을 띤 행사 홍보물이었다. 그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공민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 홍보물이었다. 그 강좌 내용은 요리교실부터 아버지학교 등 매우 다양했지만 단연 주는 인문학 강좌 안내문이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시민참여 문제는 항상 고민거리였기에 한수 배울 요량으로 진행 중인 강좌에 참여해보니 한국사회와 다른 모습의 강좌가 진행 중이었다. 우선 대중을 동원하는 1회성 강의가 아니고 연속 강의가 주를 이루었고, 참여자들이 너무 소수라는 점이 신기했다.

또 진지하게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도 우리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그런 모임은 공민관을 비롯해 주민센터 등 주민 접근이 편리한 다양한 기관에서 규모에 상관없이 열리고 있었다. 이 모두를 알게 해 준 것은 신문 간지였다. 물론 인터넷 시대에 홍보를 간지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지금은 일본도 바뀌었겠지만 말이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수원이 변하고 있다. 관심과 조금의 부지런함만 보탠다면 누구나 아주 손쉽게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시내 전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수원평생학습관은 물론 도서관, 박물관, 시민단체에서 문학, 역사, 철학과 관련한 단기, 장기 강좌가 다채롭게 열리고 있다. 작은 마을 도서관이 여러 곳에 만들어지면서 문턱을 낮추는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경제 위기 시대에 웬 인문학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물질에 기반을 둔 실용 학문이 강조되면서 가장 기초 학문인 인문학이 소외되어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실용주의 중심 학문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물질의 가치를 넘어서 좀 더 창조적이며 인간에게 이로운 삶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면서 인문학은 다시 중요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커트 스펠마이어 미국 러트러스대 교수는 철학, 언어·문학, 예술학은 물론 공학, 의학, 생명과학 등 인류사회에 적용되는 모든 문명생활에서 인문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되면 개인의 발전,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인문학의 위기가 사회의 위기, 곧 인간의 위기라는 지적을 통해 인문학이 창조적인 인간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스티브잡스는 대학을 한 학기만에 중퇴하고 철학과 인문학 강의를 도강하면서 배운 인문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애플의 창의적인 IT제품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삶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반장 한번 못해본 안랩 창시자 안철수 대선후보 역시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밖으로 돌기보다는 열심히 읽었던 독서가 오늘의 안철수를 만들었다고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히고 있다. 우리는 유명 인사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물질적인 윤택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윤택한 삶을 꿈꾼다. 그 기저에 인문학이 있다.

올해 인문학 주간은 10월29일부터 11월4일까지인데 올해는 수원시가 인문학 도시로 선정되어 선포식을 서울이 아닌 수원에서 하기로 결정되었다. '수원학'을 포함해 10강에 이르는 '역사속에 수원', 화성 유적지 탐방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가 이번 가을을 수놓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원시민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까?

물론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인터넷 구석구석을 뒤져서라도 각종 강좌를 찾아다니겠지만 많은 시민들은 아직도 지금 수원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변화를 전혀 모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좌를 알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일본 신문 속 간지가 낯선 외국인에게 공민관을 방문하도록 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