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방송에는 보통 지리산 종주라고 말하는 노고단~천왕봉 구간 25.5㎞를 산행한 것이 아니고 화엄사~노고단대피소 구간 7㎞를 방송하였는데도 남자라면 모름지기 눈덮인 겨울산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메시지가 국민에게 큰 울림으로 작용한 듯싶다.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능선상에 있는 대피소에서 이틀밤은 묵어야 하고 산행을 잘 하더라도 최소 하룻밤은 묵어야 한다. 당일치기로 주파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감히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사회에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자식교육 걱정, 전셋값 걱정 등 온갖 고민에 시달리다가 2박3일에 걸쳐 대자연속에 빠져든다는 생각만으로도 분명 40~50대의 로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3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2~3일정도 나만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도시에서는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가볼 수 있지만 지리산 종주중에는 연락을 받더라도 하산 코스에 따라 최소 5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웬만한 직장인이 온전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두 번째는 체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하루에 10시간 정도를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하므로 평상시 체력 관리를 꾸준히 해온 사람에게도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니다. 하물며 하루가 멀게 손님 접대니 회식이니 하면서 술실력만 쌓은 사람은 도중에 낙오하기가 십상이며 그렇게 해서 좌절감만 맛본다면 이런 낭패가 있겠는가! 문제는 세 번째다.
앞서 말한 대로 지리산 종주를 하려면 대피소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으나 대피소에 묵으려고 예약을 하려면 경쟁이 치열해서 순식간에 자리가 동나고 만다. 평일에는 그나마 사정이 괜찮으나 주말에는 예약하기가 너무 어려워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유는 개인의 사정이지만 세 번째 사유는 국립공원 편의시설에 대한 문제인지라 국립공원관리공단도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대피소 수용력을 3배 정도, 그게 어렵다면 2배 정도라도 늘리면 상당부분 불편함이 없어지리라 본다. 현대식 대피소로 최대 수용력을 자랑하는 세석대피소가 연면적 650㎡에 190명을 수용하니 2층 필로티 구조 등 친환경적으로 설계를 잘 한다면 500㎡ 남짓한 부지를 사용해서 400명 정도 수용인원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심에서 500㎡ 정도는 손바닥만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국립공원의 최고 정점에 있는 보존지역에 그렇게 하면서까지 탐방객에게 편의를 제공하여야 하느냐?"는 반대 의견이 상당히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골프같은 운동은 마냥 멀기만한 서민들이 쉽게 꿈꾸는 지리산 종주, 40~50대의 로망이라는 지리산 종주를 500㎡ 정도의 땅이 훼손된다고 해서 계속 어렵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이러한 논란이 수면아래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피소를 증축하면 탐방객 증가로 훼손이 심해질 우려가 없는지, 지리산 탐방로 수용력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각계 전문가들이 꼼꼼히 검토해서 자연을 훼손없이 이용하다가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자연속에서 힘든 과정을 이겨냈다는 성취감과 자기만족의 기회를 보다 많이 갖게 된다면 남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는가!